2025년 1월호 Vol. 414 왕과 함께 맞이하는 새해달다 / 미리보기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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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축제> 왕과 함께 맞이하는 새해 국립무용단이 설을 맞이하여 왕을 위한 축제를 연다. 2024년은 액운을 물리치고 신에게 행운을 기원하는 축원(祝願)의 무대를 원형극장에서 선보였다면, 올해는 대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관객을 왕처럼 융숭하게 대접하는 자리다. <축제>에 초대받은 관객은 벽사진경(邪進慶)의 의식부터 우아한 정재(呈才)의 아름다움,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춤사위까지 신년 분위기를 다채롭게 만끽하게 된다. 그렇게 한바탕 흥겨운 무대의 연속에서 관객은 자신이 왕과 왕비가 된 듯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궁중 축제의 흥미로운 재현 김종덕 예술감독 부임 후 첫 번째 설 공연이었던 <축제>는 명절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성격이 다른 춤들을 한 무대에 올리던 그간의 관행을 쇄신한 무대였다. 옛 정월 초에 지내는 제사에서 착안해 무속의 성격을 지닌 춤들로 구성한 기획은 전통의 진정한 의미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세시풍속에 어울리는 춤에 대한 관심도 일으키면서 다른 명절 공연에 대한 기대감까지 자극하는 파생 효과도 얻어냈다. 올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새롭게 마련된 <2025 축제>는 이 같은 ‘전통과 전통춤의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의 연속선상에 있는 공연이다. 이를 통해 국립무용단은 단순히 ‘흥겨운 명절 잔치’를 넘어설 공연을 또 하나의 탄탄한 기획으로 자리매김하려는 포부를 내비친다. 그런 점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신년의 테마다. 지난 공연이 ‘무속’이라는 기준을 내세웠다면, 2025년 설 공연의 키워드는 ‘왕실’ 또는 ‘궁중 축제’다. 왕을 위한 축제, 왕과 함께하는 잔치와 의식을 보여 주며 ‘궁중의 설 풍경’이라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획의 힘이 돋보인다. 전체 구성은 2024년과 동일하게 총 3장에 걸친 일곱 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단 ‘영신(迎神)’ ‘오신(娛神)’ ‘송신(送神)’ 등 무속 의식 과정을 큰 틀로 차용한 지난 공연과 달리 이번 무대는 ‘구나(驅儺)’ ‘연향(宴饗)’ ‘국중대회(國中大會)’라는 다른 형식의 전통문화를 각 장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다만 각 장을 구성하는 테마는 왕과 궁중 행사라는 키워드로 연결돼 있어 궁중에서 펼쳐지는 정초의 행사라는 취지에 부합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기획의 초점이 ‘궁중춤’이 아닌 ‘궁중 행사’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객에게 익숙한 궁중춤의 형태는 아무래도 정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궁중 정재로만 채워진 명절 무대는 대개 전형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반면 궁중 행사를 테마로 한 공연은 단순히 춤을 넘어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장이 된다. 대표적으로 이번 무대에서는 첫 번째 장인 ‘구나’가 그런 역할을 한다. 1년의 마지막 날에 궁중에서 한 해 동안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진행한 이 의식은 민속에서의 여러 행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측면이 있기에 기대감을 자아낸다. 또한 설 공연의 시간적 전제가 대개 새해가 시작된 후의 희망과 기쁨에 맞춰진 데 반해, 구나는 섣달그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그저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날이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날이라는 인식이 이 의식의 핵심이다. 김종덕 예술감독은 이처럼 사귀를 쫓고 경사스러운 일을 염원하는 구나의 본래 의미를 <벽사진경>에 담아냈다. 담백하지만 강인하게 펼쳐지는 남성 춤의 멋은 구나 의식에서 잡귀를 물리치는 방상씨의 강렬한 존재감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왕의 눈으로 바라본 새해의 시작 첫 장 구나가 새해의 시작을 알린다면, 이어지는 2번째 장 ‘연향’은 궁중 축제의 꽃인 잔치 풍경을 보여 준다. 연향은 명절 공연에서 익숙한 형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빠져서도 안 되는 중요한 장이다. 관객에게는 옛 궁중 잔치에 초대된 듯한 현장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춤을 보여 줄 것인지가 아니라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 것인지에 있다. 그래서 국립무용단은 본격적인 춤에 앞서 왕이 행차하는 장면을 별도의 작품으로 분리해 보여 준다. 김종덕 예술감독이 연출하는 <왕의 행차>는 회례연에 참석하기 위해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연경당으로 행차하는 왕과 왕비의 모습을 그린다. 이처럼 개별 춤의 스펙터클보다 전통이라는 맥락을 고려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기존 명절 무대와 확연히 다른 점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향에서 선보이는 대표적인 두 춤은 춘앵전과 처용무다. 춘앵전은 명실공히 궁중 정재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춤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독무인 춘앵전 대신 두 명의 무용수가 대향(對向) 구도로 춤을 추며 연향의 절정을 보여 준다. 뒤를 잇는 처용무는 앞서 구나와도 맥락적으로 이어지는 춤이다. 신라 때부터 시작해 고려와 조선을 거쳐 궁중 나례(儺禮)와 연례(宴禮)에서 처용 가면을 쓰고 추었던 처용무는, 그래서 설 공연에서 가장 많이 연행되는 춤이기도 하다. 두 춤 모두 인남순의 안무로 공연되는 이번 무대에서는 기존의 형태와 어떻게 다른 변화를 보여 줄지 주목된다. 마지막 장인 ‘국중대회’는 부여와 고구려 시대까지 맥이 닿아 있는 국가 행사 제천을 모티프로 한 대목으로 눈길을 끈다. 하늘에 백성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고대 행사의 성격을 차용한 것이다. 여기서는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왕비의 마음을 담아낸 태평무를 박재희의 안무로 선보인다. 정초에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로서 대표적인 민속춤 중 하나인 태평무가 궁중에서 연행되는 이 대목에선 흥미로운 발상을 느낄 수 있다. 이어지는 두 춤은 어느새 왕과 왕비의 시선이 된 관객에게 흥겨움을 선사하는 타악기 공연으로 채워진다. 정관영의 안무로 평채 호흡을 응용한 춤사위와 소고의 겹가락으로 선보이는 평채소고춤과 화려한 북장단으로 새해의 기운을 깨우는 무고가 그것이다. 기존의 명절 무대에서도 인기 레퍼토리였던 평채소고춤은 이번 공연에서도 여성 춤꾼을 중심으로 흥겨운 사물놀이와 태평소 가락을 선보이며 관객과 소통하게 된다. <2025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어쩌면 국립무용단이 새롭게 선보이는 북춤 ‘무고’가 차지할 수 있다. 남녀 춤꾼들이 각각 5개와 3개의 북을 들고 나누는 장단의 대화는 어느 공연이 그렇듯 이번에도 대단한 장관이 예상된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북춤의 묘미는 궁중 행사와는 거리가 있지만, 한 해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순간의 염원은 동서고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일한 것임을 영리하게 반영한 배치가 돋보인다. 지난 1번째 설 공연에 이어 2년째 혁신을 시도하는 <2025 축제>는 국립무용단이 정한 방향성을 뚝심 있게 관철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관객은 을사년의 시작을 여는 이번 공연을 통해 국립무용단의 춤 미학이 한 해 동안 어떻게 펼쳐질지 가늠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왕과 함께하는 축제를 통해 춤과 전통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품격 있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글.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미학과 비평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계의 다양한 변화를 오랫동안 주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창작과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국립무용단 설명절 기획 <2025 축제 祝·祭> 일정 2025-01-29 ~ 2025-01-30 | 시간 수·목 15:00 |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권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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