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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호 Vol. 414

국악관현악 최전선의 플랫폼

달다 / 미리보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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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하는 <제16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국악부문>
국악관현악 최전선의 플랫폼

대한민국의 대표적 창작 관현악 축제인 ARKO(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는
명실공히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암시하고 이끌어 주는 최전선의 플랫폼으로서 기대감을 안긴다.




외부의 위촉 없이 작곡하기가 쉽지 않은 관현악 작품에 대한 창작의 계기를 부여받은 작곡가에게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는 매년 몇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도전하고 싶은 장이다. 2024년에도 국악관현악 부문에서 45개의 작품이 응모되어 다섯 작품이 선정되었다. 초연 작품 21곡 중에서는 3곡이 선정되어 7대 1의 경쟁률을, 재연 작품인 경우 24곡 중 2곡이 선정되어 11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보여 주었다. 심사위원의 총평을 보니 과거에 비해 국악관현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사운드의 악기 배합에 고민을 많이 한 작곡 경향이 우세한 듯하다.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일반 공연장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나 실내악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작품이나 서양 오케스트라 곡을 국악관현악으로 옮긴 작품은 되도록 배제하고 동시대 국악 창작 음악의 변화 흐름을 주도하고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신선한 작품에 심의의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심사 기준이 대중성에 함몰되지 않고 국악관현악 고유의 사운드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선정하다 보면 서양 오케스트라와 변별성 없이 청중의 박수갈채에 취해 있는 일부 기성 관현악단의 공연 현장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아창제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큰 이유다.

이렇게 엄선된 5개 작품이 2025년 1월 국립국악관현악단(지휘 김성국)의 연주로 <제16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국악부문> 음악회 무대에 오른다. 해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양악·국악부문이 개최됐는데, 이번에는 국립극장과 아창제가 공동주최함에 따라 국악부문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연주된다. 이 역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평소에 예당 콘서트홀이 양악 관현악의 전용 콘서트홀처럼 사용되듯이 리모델링된 해오름극장이 국악관현악 전용 콘서트홀의 위상으로 자리매김해 국악관현악의 완전한 자연음향 실현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온 터라 이번 공간 결정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첫 곡은 김상진 작곡의 정악대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청공(淸空)의 소리’로 초연작이다. 여기서 청공은 ‘푸른 하늘’과 대금의 특별한 구멍으로서의 ‘청공’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대금은 취구와 지공 사이에 갈대 속청을 붙인 청공이란 구멍을 가지고 있어 특정 음역대에서 특유의 맑고 또렷하면서도 거세고 날카로운 음 빛깔을 낸다. 작곡가는 대금의 청공에서 나는 이 특별한 음색에 주목해 청공의 소리를 정악 선법의 시김새로 표현했다. 여기에 각 악기군 선율이 폴리리듬(Poly Rhythm)으로 전개됨으로써 각 성부 간에 선법적으로 결과되는 수직적 화음-작곡가 표현에 따르면 율화성(律和聲)을 만들어 낸다. 

다음으로 김신애 작곡의 ‘걸리버 여행기’ 서곡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국악관현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곡의 시작에서 문묘제례악의 추성을 불협화적 화음으로 풀어낸다. 문묘제례악은 한 음을 길게 뻗으면서 그 끝을 올리는 특징을 가져서 요즘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이라기보다는 이국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현대음악에서 심심찮게 작곡의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또한 이 곡에서는 걸리버가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다는 스토리에 착안해 각 나라의 이미지를 개개의 국악기가 갖는 음색 특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곡이기 때문에 각 나라의 이미지가 짧게 등장하고, 마지막으로는 다시 폭풍을 뚫고 나아가는 걸리버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음악적 서사가 전개된다. 작곡가는 이를 인생의 여정에 비유했다. 국악관현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친근한 『걸리버여행기』라는 소설을 음악적 텍스트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정호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는 재연곡 2곡 중 하나로 심사위원이 실연 영상을 보고 선정한 작품이다. 그만큼 악보만으로 이루어지는 심사의 허점을 방지하고 좀 더 수행적 관점에서 음악의 가치가 증명된 곡이다. ‘아부레이수나’는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 마을에서만 부르는 독특한 '모심는 소리'다. 모심는 일꾼들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모를 심는 모습을 나타낸다. 모심기를 마무리할 무렵에는 ‘돔소소리’로 넘어가는데 이정호의 국악관현악 ‘아부레이수나’는 바로 이 ‘아부레이수나’와 ‘돔소(도움소)소리’ 선율을 주제로 하여 관현악적 연주 기법을 활용한 작품이다. 이정호는 이미 9회와 13회 아창제에서 작품이 선정된 바 있어, 이번을 계기로 아창제에서 최다 작품이 선정된 작곡가 중 한 명이 됐다. 이후 아창제의 공식 위촉이 예상된다. 향후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 갈 주자로 예상되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 만하다.

최윤숙의 25현 가야금 협주곡 ‘도롱이를 쓴 그슨새’는 제주도 민요인 ‘이야홍타령’과 제주도 정통 요괴인 ‘그슨새’를 주제로 만들어진 창작곡이다. 이야홍타령은 제주 지역의 생태적·여흥적 특성이 잘 드러난 대표적 제주 민요이다. 그간 제주 민요를 작곡 소재로 할 때 이야홍타령은 보편적으로 쓰인 소재라서 이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설정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곡은 ‘그슨새’라고 하는 제주 지방에서 전해지는 요괴가 등장해 서사를 이루는 중요한 소재로 작용한 점이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그슨새’란 제주도에서 입는 도롱이를 걸친 모습으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자주 나타나는 요괴라고 한다. 25현 가야금 솔로는 ‘그슨새’를 표현하고, 이야기 속 두 남녀 주인공은 각각 ‘피리’와 ‘거문고’로 표현해 그슨새에 홀리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러한 표제적 음악이 어떻게 국악관현악과 가야금의 협연으로 효과적으로 구현되는지에 주목해볼 만하다.

최지혜의 첼로 콘체르토 ‘미소’는 19세기에 활동한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삶을 담아낸 곡으로 재연곡으로 선정되었다. 작곡가는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사랑한 선교사의 희생과 섬김의 삶을 주제로 삼았다. 원곡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믹스드 오케스트라(Mixed Orchestra) <충돌과 조화>라는 공연 제목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이때에는 서양의 현악기와 관악기가 대거 편성되어 동서양 오케스트라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이번 응모에서는 서양 악기를 국악기로 대체해 국악관현악곡에 첼로 독주가 협연하는 것으로 편성이 바뀌었다. 최지혜는 국악관현악 ‘감정의 집’을 비롯해 협주곡·뮤지컬·CCM 등 장르와 매체를 비교적 광범위하게 넘나들며 순수음악과 실용음악의 벽을 뛰어넘는 작곡가이고 국악관현악 작곡가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 여성 중견 작곡가로 발돋움하고 있어서 이 작품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음악회의 작곡가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ARKO 한국창작음악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20~40대가 전체 참가자의 주축이 되고, 세대교체의 중요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세대교체는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는 데 일조한다. 2025년 작품들도 이러한 밝은 전망을 확신하는 데 일조하리라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2024년에도 아창제의 지휘를 맡아 평론가와 현장 관객에게 호평을 받았던 김성국이 이번에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그의 섬세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국악관현악 지휘의 정수를 만끽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글. 이소영 음악평론가


<제16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국악부문>
일정 2025-01-18 | 시간 토 17:00 |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권 R석 3만 원, S석 2만 원, A석 1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