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호 Vol. 414 이토록 치밀한 신년 음악회달다 / 미리보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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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5 시즌 오프닝 콘서트> 이토록 치밀한 신년 음악회 유럽도 빈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신년 음악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2025년 창단 40주년을 맞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첫 발걸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신년 음악회’는 관현악단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8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이 조명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우아한 왈츠 중심의 프로그램도 아니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유럽도 빈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후죽순 늘어나는 ‘신년 음악회’를 기획하는 관현악단은 각자의 방식으로 파티를 준비한다. 이 가운데 2025년 창단 40주년을 맞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국립심포니’)는 그들만의 색으로 대한민국 관현악단만 할 수 있는 ‘신년 음악회’를 선보이는 대표적 단체다. 기본적으로 ‘기악’ 연주 단체이지만 전통적으로 오페라와 발레의 협업을 중시하고, 이른바 ‘클래식’으로 통칭되는 서양 고전음악 혹은 예술음악을 현대 정서에 맞게 해석하고 지속하려는 몇 안 되는 관현악단이다. 국립심포니의 2025년 시즌 프로그램을 보면 다채롭기 그지없다. 국립심포니의 신년 음악회가 특별한 이유는 거기에 쏟는 이상할 정도의 정성에 있다. 신년 음악회는 말하자면 단발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관현악단의 입장에서 그 무게감은 악단의 연주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받는 정기 연주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말 그대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준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집중하기 어려운 행사다. 하지만 그래서 ‘빈 필하모닉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면 금방 티가 나니, 준비가 쉽지 않다. 근래 국립심포니가 선보인 신년 음악회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에 익숙한 관객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2025년 신년 음악회도 마찬가지. 주페의 서곡과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이어 갑자기 피아졸라의 탱고라니. 인터미션 후 다시 도니제티와 레하르의 주옥같은 오페라 선율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비나리·심청전 같은 창극이 들려오고, 라벨의 볼레로가 현대무용과 함께하며 막을 내린다. 그야말로 비빔밥이 따로 없다. 그리고 이건 좋은 소식이다. 서양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관현악과 오페라 현대무용 국악까지 다채로움을 넘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온갖 예술이 뒤섞여 있지만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유럽도 빈도 아닌 이곳 대한민국에서 신년 음악회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같은 전통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신년 음악회는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 앞서 ‘비빔밥’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보다 우리의 정체성을 더 확실히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도 없지 않은가. 물론 미식가들은 안다. 단순히 온갖 재료를 다 넣고 비빈다고 맛있는 비빔밥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어쩌면 맛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다 집어넣고 무작정 비비면 그 맛이 그 맛이라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안다. 하지만 국립심포니의 신년 음악회는 다르다. 비유하건대 좋은 재료를 정성 들여 가공해 적절한 순서로 배치하고 정교하게 비벼서 이색적인 맛을 낸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주페의 <경기병> 서곡으로 시작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왈츠로 이어지는 1부는 전혀 색다르지 않다. 여기까지는 ‘아는 맛’이다. 하지만 느닷없이 등장하는 피아졸라의 탱고와 박종성의 하모니카 소리는 말하자면 1부의 ‘킥’이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하모니카의 울림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3대가 함께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신년 음악회에 잘 어울린다. 인터미션 이후 이어지는 2부에서는 하모니카와는 다른 의미로 울림이 있는 성악의 향연이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과 <연대의 딸>의 대표 아리아를 각각 베이스바리톤 전태현과 테너 손지훈의 음성으로 만날 수 있다. 레하르의 오페레타 <주디타>의 매혹적인 선율은 소프라노 김순영이 들려준다. 결국 모두 사랑 노래 아닌가 싶지만 이탈리아와 헝가리 작곡가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다양성과 화합은 지속된다. 다양성과 화합의 정점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만든 음악극 ‘창극’이다. 국립창극단원 유태평양의 소리로 만날 ‘비나리’나 판소리 ‘심청전’의 ‘얼쑤, 심봉사 눈을 떴네!’는 그 자체로 도니제티나 레하르의 아리아와 훌륭한 대비를 이루지만, 합창음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곡가 우효원의 터치를 통해 진정한 만남이 완성된다.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음악을 어울리게 만드는 것. 모든 예술가가 꿈꾸는 일 가운데 하나다. 국립심포니의 신년 음악회는 라벨의 볼레로로 마무리된다. 물론 여기에도 ‘킥’은 있다. 시나브로 가슴에(SIGA) 무용단이 함께하며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볼레로’를 선사한다. 기존 음악 작품에 무용이 더해질 때 기억해야 할 점은 무용이 음악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무용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무용은 음악적 시에 대한 또 다른 시, 즉 ‘메타 시’이다. 요약하면 국립심포니의 신년 음악회 1부와 2부는 각각 관현악과 성악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수를 자극하는 하모니카 소리는 1부 끝에 아득한 여운을 남기며 잊혀 가는 전통을 마주하는 심정을 되새기게 한다. 반면 2부 말미에는 현대무용과 만난 라벨의 볼레로가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전통과 혁신은 순환적이다. 그러니까 전통에 대한 존중과 혁신을 위한 노력은 함께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강강술래의 원형적 움직임과 음악적 순환을 무대 연출로 녹였다. 일상에서 무대로, 다시 무대에서 일상으로 순환하는 우리의 삶 중심에 음악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토록 치밀한 신년 음악회라니! 국립심포니가 의도한 ‘메시지’가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사실은 이토록 ‘한국적’인 신년 음악회는 40년 역사의 국립심포니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도 널리 알리고 자랑해야 한다. 국립심포니의 2025년 시즌 키워드가 ‘New Origin’, 즉 ‘새로운 기원’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던가. 40년 전통의 국립심포니가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역사는 2025년 시즌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야심만만한 계획을 신년 음악회에서 미리 경험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신년 음악회는 빈 필하모닉의 그것을 닮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자부심을 갖고 뚝심 있게 ‘새로운 기원’을 만들면 된다. 그러고 보니 국립심포니의 ‘신년’ 음악회가 예정된 2025년 1월 15일은 음력 2024년 12월 16일. 그러니까 설날을 2주 앞두고 열리는 ‘송년’ 음악회이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이유는 다가올 새해를 기대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저녁노을과 아침노을 모두 하늘이 햇빛을 받으며 보이는 현상이다. 이제 국립심포니가 준비한 우리만의 신년 음악회를 만날 시간이다. 글. 계희승 작곡과 이론을 전공한 음악학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부교수. 2018년부터 KBS 클래식FM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코너에 출연해 “상상의 박물관”에서 탈출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2025 시즌 오프닝 콘서트> 일정 2025-01-15 | 시간 수 19:30 |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권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1만 원 |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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