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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호 Vol. 414

자기중심적 시각의 틀이 가져온 비극

달다 / 미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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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컴퍼니 <붉은 낙엽>
자기중심적 시각의 틀이 가져온 비극

자신만의 시선에 갇혀 세상을 바라본다면, 진실은 그 틀 밖에서 사라져 버린다.
진정한 이해란 어떻게 가능한가.




공연은 에릭이 무대 안쪽에서 커튼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대는 숲속에 그 나름대로 잘 지어진 어느 외딴집의 거실이다. 에릭은 한때 사람들이 이 집을 꽤나 부러워했다고 소개한다. 자신은 이 집을 절대로 금이 가지 않는 튼튼한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래서 하나뿐인 아들 지미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 자기 꿈이었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모두 과거형이다. 이 집엔 이제 에릭만 남았으니까 말이다. 
그는 천천히 거실 한편의 선반으로 걸어가 2개의 가족사진을 꺼내 든다. 사진 속에 모여 앉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 자신과 여동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그들을 하나로 묶은 가족의 의미를 아련하게 추억하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내 그는 이게 다 거짓말이라며 고개를 흔들더니 사진을 제자리에 놓는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문이 생기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한 누군가가 잠시 이곳에 들르겠다는 전화다. 그러고는 암전이나 장면전환 없이, 에릭이 자세를 바로잡고 몇 걸음 옮기는 것으로 공연의 시간과 공간은 오래전 그때로 이동한다. 


너무나 평범했던 가족, 그리고 어느 날

그날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아내인 바네사와의 소소한 대화, 게임에 빠진 아들 지미에 대해 부모로서 의당 할 수 있는 걱정 섞인 잔소리, 다리를 다쳐 한동안 동생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형 워렌의 가벼운 농담…. 그리고 늘 그랬듯 이웃 카렌으로부터 자기가 귀가할 때까지 지미가 자신의 딸 에이미를 잠시 봐줄 수 없냐는 전화가 걸려 온다. 지미는 늘 하던 대로 에이미를 봐 주러 집을 나선다. 이번에는 에릭 대신 그의 형 워렌이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지미를 중간에 내려 주겠다며 함께 나선다. 어느새 밤이 깊었고, 지금 출발한다는 지미의 전화가 걸려 온다. 에릭이 데리러 가겠다고 하자 지미는 그냥 혼자 걸어오겠단다. 얼마 후 집 밖에 차량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치더니 지미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그런데 이들의 일상은 다음 날 카렌의 전화 한 통화로 흔들린다. 아침에 일어나 에이미의 방문을 열었는데 에이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지미를 향한다. 정확히 지미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그날 밤, 지미의 행적과 옆에 있던 사람들을 그 틀 안에 욱여넣는다. 며칠 후 실종되었던 에이미가 살아서 발견되고, 납치범 역시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지만 때는 늦었다. 사람들은 자기변명 아니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지미에 대한 의심을 놓지 않는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지미는 카렌이 쏜 총에 죽임을 당하고, 카렌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형 워렌도 자살했고, 아내 바네사도 떠났다. 절대 금이 가지 않게 만들고 싶었던 이 집에 에릭만 혼자 남았다.




편견 어린 시선들의 감옥

"카메라를 든 남자는 인간이고, 꾸밈없는 인간이란 없기 때문에 결국 꾸밈없는 사진이란 있을 수 없다.”
- 빌렘 플루서, 『몸짓들:현상학 시론』, 안규철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18, 111쪽.

이 글을 인용하는 것은 연극 <붉은 낙엽>은 에이미 실종 사건이 있은 뒤, 지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고, 결국 편견의 앵글이 만들어 내는 온갖 추측과 자기합리화의 서사에 갇혀 지미라는 존재가 끝내 어떻게 지워져 버리는지, 그와 함께 모두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직업이 사진사인 에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그는 사진사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중심을 잡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역시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고 말았다. 친구도 없고 과묵했던 아들의 성격, 구부정한 어깨, 소심한 걸음걸이와 말투 하나하나가 전과 달리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한번 무너진 에릭의 시선은 역시 편견의 서사를 쓰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빠르게 헝클어진다. 가끔 집 옆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귀엽게 바라보던 형을 소아성애자로 단정하는 경찰의 시선에 휩쓸리고, 아들의 변호를 부탁한 지인 변호사와 아내를 연인 관계로 몰아간다. 그렇게 주변의 시선에 휩쓸려 제어할 수 없게 흔들리고 흐려지는 에릭의 ‘사진 촬영’은 점점 더 심연 속에서 스스로를 잃고 헤매면서 자기 앞의 대상을, 상황을 왜곡시킨다. 
이 지점에서 무대를 함께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카렌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무대 밖을 벗어났다 들어오기도 한다. 특히 지미는 공연 중 유일하게 사각의 무대 바깥을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에릭은 공연 내내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무대가 에릭의 시각 프레임이라 할 때, 에릭은 그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런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눈먼 자나 다름없었다. 공연 초반, 모두가 떠난 빈집, 그의 빈 사진틀 안에서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모두 다 거짓말이라고 했을 때, 그건 바로 대상을 자기 관점대로 해석하고 규정했던 이런 자신의 그릇된 시선에 대한 뒤늦은 자책이자 고백이다.




열린 시선, 열린 감각을 향해

연극의 마지막은 다시 처음 장면으로 되돌아간 시점에서 추가로 이야기를 이어 간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빈집에서 에릭이 전화를 받고 기다리던 사람은 오래전 그를 떠난 에이미였다. 자기 앞에 선 에이미를 바라보는 에릭의 시선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모든 것을 남보다 더 정확히 본다는 환상에 빠져, 정작 보고 품어야 할 것들을 얼마나 많이 지우고 놓쳐 버렸던가. 특히 에이미가 내미는 그들의 가족사진은 에릭이 갖고 있는 선반 위 두 개의 가족사진과 포개지면서, 관객인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시작된다. 즉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단 한 장의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이재원 옮김, 이후, 47쪽. 

여전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좁아진 시각에 갇혀 이 세상을 살고 있다. 극악해지는 단호한 틀 짜기 그리고 갈라치기로 혼란의 정점을 찍고 있는 세상. 하지만 세계를 채운 무수한 존재들의 고유한 목소리와 몸짓에 우리 모두의 시각을, 정확히 감각을 열기로 하자. 세상에는 나 이외의 무수한 존재가 있다. 그 안에 나 또한 함께 있음을,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음을 지금이라도 서둘러 알아 가기로 하자.


글. 이경미 공연평론가
사진 제공. 우리문화재단_라이브러리컴퍼니


라이브러리컴퍼니 <붉은 낙엽>
일정 2025-01-08 ~ 2025-03-01
시간 화·목·금 19:30, 수·토 15:00, 19:30 일·공휴일 14:00, 18:30 | 장소 달오름극장
관람권 R석 7만7천 원, S석 6만6천 원, A석 4만4천 원 | 문의 070-4190-1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