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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호 Vol. 414

푸른 뱀띠, 그 비상을 위해

내다 / 스페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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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뱀의 의의
푸른 뱀띠,
그 비상(飛上)을 위해



옛말 또는 사투리로 ‘비얌’ ‘배암’이라고도 하는 뱀은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40배가 되는 약 1억 3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등장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지구 생명체 탄생 연혁에서 인간의 선배에 해당하는 뱀을 사람들 대부분은 싫어한다. 그 이유는 생김새가 징그럽고, 흉측하며, 독을 지닌 뱀이 많고, 둘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 징그러운 비늘로 덮인 몸, 몸으로 기는 기괴한 이동법, 차가운 눈 등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 인사로 “뱀 있나?” “뱀 없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2,700여 종 뱀 중에 독을 지닌 뱀은 25% 정도에 불과하나, 뱀에 한번 물린 사람은 10년 동안 두레박줄만 보아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면서 땅에 몸을 가장 많이 대고 살기에 땅과 밀접한 냉혈동물이면서, 독을 품고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전설·민담, 그리고 속신(俗信) 등 전하는 이야기가 많은 동물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일본·베트남 등 많은 나라에서 땅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면서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모신 열두 동물 중 하나가 뱀이다.
또한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이시미)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특별한 계기를 통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 체계도 있다.


간지(干支)로 본 뱀띠

2025년은 육십갑자(六十甲子) 중 42번째에 해당하는 을사년(乙巳年)이다. 매년 바뀌는 연도의 이름을 나타내는 육십간지는 하늘의 시간과 방위를 의미하는 ‘십간(十干)’과 땅의 시간과 방향을 의미하는 ‘십이지지(十二地支)’의 결합이다.
십간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을(乙)’은 음양 중 음(陰), 오행(五行) 중 갑(甲)과 함께 목(木), 즉 동쪽이기에 태양이 솟는 곳으로 나무가 많아 푸르다고 인식해 색상은 청색이며, 봄을 의미하면서 양기가 강하고, 숫자는 ‘8’에 해당한다.
십이지신(十二地神) 중 6번째에 해당하는 뱀은 육십갑자에서 기사(己已), 신사(辛巳), 계사(癸巳), 을사(乙巳), 정사(丁巳) 순으로 나타나는데, 2025년이 을사년이니 육십갑자 중 4번째 뱀띠에 해당한다.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인 뱀은 시간으로는 오전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음력 4월을 지키는 시간의 신이자 방위의 신이다. 
2025년은 육십갑자 중 을사년이기에, ‘십간’ 중 ‘을’에 해당해 색상이 청색이고, ‘사巳’에 해당하는 동물이 ‘뱀’이기에 2025년을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재난인 흉사(수재·화재·풍재·병난·질병·기근 등)를 일반적으로 삼재三災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삼재가 주기적으로 3년간 드는데, 편의상 들어오는 해를 ‘들삼재’, 눌러앉는 해를 ‘눌삼재’, 나가는 해를 ‘날삼재’라고 한다. 뱀해에 태어난 사람은 돼지해에 들삼재, 쥐해에 눌삼재, 소해에 날삼재이니 이에 해당하는 3년 동안에는 인간관계에서 조심하고, 모든 일을 꺼리고 삼가야 한다고 믿는다.


뱀, 그 실상과 상징

현실 세계에서 뱀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항상 조심해야 하고, 피해야 하며, 징그럽고 거북스러운 존재다. 한편으로 뱀을 노쇠한 몸에 원기를 가져다주는 신비한 명약으로 여겼기에 사람들은 뱀을 잡아 돈을 벌었고, 뱀을 먹고 건강해지길 원했다. 또한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상징으로 여기면서, 꿈에 나타난 뱀을 임신이나 재물이 들어올 풍요의 징조, 재물을 지켜 주는 집안 신 등으로 여기면서 위했다.
이에 뱀을 다양한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했고, 각종 설화에도 뱀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방향을 상징하기에 천문도와 윤도 등에도 그려지거나 새겨졌다.
그림으로 표현된 뱀을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사신도·장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신도에서 뱀과 거북의 합체인 현무의 뱀은 양(陽)의 기운을 지닌 존재, 곧 수컷에 해당하고, 거북은 음기(陰氣)를 지닌 암컷 역할을 하는 존재로 여긴다. 이에 뱀과 거북이 얽힌 채 머리를 돌려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입에서 뿜어낸 기운이 허공에서 만나 어우러지는 현무의 모습을 ‘재생’이라는 종교론적 상징성과 우주적 질서의 회복으로 여긴다. 또한 현무를 북방의 수호신으로 여겨 무덤 벽화에서 북쪽에 배치한다. 고구려 삼실총에 그려진 장사도(壯士圖)를 보면, 무덤을 지키는 장사의 목에 뱀이 감겨 있다. 뱀을 무덤을 수호하는 존재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십이지 뱀 그림(巳神圖像), 수륙재·영산재를 비롯한 각종 불교 의식에서 내결계를 위해 건 십이지 중 뱀 그림은 남남동 방향에서 올 수 있는 살을 막기 위한 것이다. 경기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시왕도(十王圖), 해상명부도(海上冥府圖)에도 십이지 중 하나인 뱀을 그렸는데, 악인에게 벌을 주거나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천문도(天文圖)를 비롯해 방위를 표시한 둥굴고 넓적한 판인 윤도(輪圖)에는 남남동 방향에 뱀을 그려 그 방향을 표시하였다.
큰 뱀이 쫓아와 합장(合葬)을 방해했다는 신라 시조 혁거세 이야기, 뱀이 사흘 동안 운 후 지진이 나고, 왕이 죽었다는 신라 나해 이사금조에 실린 이야기, 신라 경문왕이 “나는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자지 못하니 금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 등 『삼국유사』를 비롯해 많은 책에 뱀을 소재로 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설화들을 통해 뱀을 해악을 끼치는 존재,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존재, 수호하는 존재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뱀은 그리스 신화 속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언제나 뱀이 감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 것에서 기인해 의술이나 의사를 상징한다. 인도와 일본에서도 뱀을 풍요를 관장하는 신령으로 인식해 비와 번개를 불러 가뭄에서 구하며, 뱀을 모신 사원에서 부와 번영을 기원하며 정성스레 비는 신앙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 앙코르와트에서도 7개의 머리를 가진 뱀신인 나가상을 수호신장으로 조각했다.
이와 같이 그림·조각·설화 등에 표현된 뱀은 수호신장, 재생 또는 우주 질서의 회복, 남남동 방향을 지키는 존재 또는 해당 방향을 표기, 벌을 주는 존재, 풍요·다산 등을 관장, 예언하는 존재 등 다양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우리 생활 속의 뱀

조선시대 각종 기록이나 유물을 보면 뱀은 물리치고, 피해야 할 존재이면서, 적절하게 이용하는 존재로 기록되었다.
『산림경제』에는 뱀을 물리치는 내용이 수록되었고, 향갑노리개(香匣)에 주로 사향을 넣었는데, 사향은 뱀을 쫓아 주고, 뱀에 물렸을 경우 해독제가 되기도 했다.
삼척시립박물관에 소장된 1791년 강원도 삼척에 거주하는 김낙초·홍장섭 등이 올린 진정서에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던 한 효자에게 갑자기 파란 뱀이 나타났고, 뱀을 약으로 써서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더해 각종 지리지를 보면, 지역에서 국가에 진상하는 특산물로 백화사(白花蛇), 뱀 껍질을 적었다. 또한 국가의 권위를 세우고,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뱀의 모습을 그린 현무기, 뱀독을 바른 화살촉 등을 사용했다. 
제주도에서는 안칠성과 밧칠성을 뱀의 화신으로 여겨 곡식을 지켜 주어 부자가 되게 한다고 믿는다. 장독대, 마당 뒤뜰, 곳간과 같은 곳에 머물면서 재물을 지켜 준다는 집안 신을 ‘업’이라 하는데, 뱀과 함께 구렁이·두꺼비 등을 대상 신령으로 여긴다. 이러한 업 신앙이 전국에서 전승되고 있다.
삼월삼짇날에 처음 본 동물로 그해의 풍흉을 점치는 경우가 많은데,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뱀을 보면 1년 내내 게으르거나 몸이 제일 무겁다고 점을 치고, 강원도 원주에서는 뱀을 보면 그해 재수가 없다고 여긴다. 이와는 달리 뱀은 허물을 벗기 때문에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의 존재로 인식되며, 보편적으로 달과 같은 동물로 생각되는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는 지역도 많다.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서는 주로 부엌문에 ‘사(蛇)’자를 거꾸로 붙이는데, 이렇게 하면 부엌에 뱀이 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달리 부산에서도 동짓날 ‘사’자를 거꾸로 붙이는 풍속이 전승되었다. 솥 위의 부엌 벽이나 집 기둥에 붙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악귀를 퇴치하고 악귀의 침입을 막는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호남 사람인 이삼만은 뱀에 물려 죽은 부친의 복수를 위해 뱀을 보는 대로 모두 잡아 죽였다고 한다. 이에 호남 지역에서는 아직도 뱀을 쫓기 위해 이삼만이라는 글씨를 거꾸로 붙이는 풍속이 남아 있다.


지킴·재생·풍요·미래로 나아가는 을사년을 위해

각종 기록과 그림·조각·설화·속신 등을 통해 뱀이 지닌 다양한 문화코드·의미·기능 등을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뱀이 지닌 외형적인 모습, 생물학적 특성 등으로 인해 기피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외국에서 뱀의 이러한 특성을 피하기 위한 습속을 만들어 내면서, 동시에 이를 활용해 수호·풍요·재생·미래 예측 등 다양한 의미로 재해석해 사람과 가까이하는 존재로 재창조되어 인식되고 있다. 
2025년 을사년, 푸른 뱀띠 해를 맞이해 뱀이 지닌, 특히 푸른 뱀이 지닌 이와 같은 긍정적 면모를 적극 인식하고 활용해 개인의 삶, 대한민국의 안정,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지킴·재생·풍요를 바탕으로 모두가 함께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을사년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글. 김도현
고려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했고, 2001년부터 지금까지 역사민속·민속신앙·불교의례·시장민속·전통지식을 조사·연구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외래교수,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위원, 삼척고등학교장이다.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편), 『상상과 현실, 여러 얼굴을 가진 뱀』, 국립민속박물관, 2012.
국립민속박물관(편), 『韓·中·日 문화 속의 뱀』, 국립민속박물관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2012.
김동섭, 「밧칠성」, 『가정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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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래옥, 「설화에 나타난 뱀」, 『뱀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 국립민속박물관,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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