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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호 Vol. 413

사이의 스펙트럼

달다 / 다시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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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2024 안무가 프로젝트>

사이의 스펙트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2024 안무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국립무용단 공모를 통해 선발된 작품 3편이 ‘트리플 빌’ 형태로 무대에 올랐다.




<2024 안무가 프로젝트>는 안무가 3인 3색의 주제 의식을 서로 다른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구현한 프로젝트로서,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스트리트댄스에 이르기까지 무용의 다양한 장르와 표현 방식을 융합하며 경계에 선 시각으로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지닌 작품을 펼쳐 냈다. 


최종인 <휙>


최종인 <휙> - 쇼트폼의 시대, 분할된 주체의 움직임

2020년 대한민국무용대상에서 <어(漁)-고기잡을 어>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실력자인 최종인은 그동안 Mnet <스테이지 파이터> 프로그램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독창적 아이디어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독자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을 받아 왔다. 
이번에는 <휙>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작품을 통해서 쇼트폼(short-form) 콘텐츠에 익숙해진 디지털 시대의 단면을 선명하게 그려 냈다. ‘휙’이라는 제목 역시 스마트폰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빠르게 스크롤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의성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품은 제목처럼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넘기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된다. 각각의 동작은 쇼트폼처럼 찰나에 시작되었다 끝난다. 
이 찰나의 모든 춤은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시각적 화려함을 더한다. 무대를 채우는 일곱 개의 직사각형 거울은 현대인이 쇼트폼을 보는 주된 매체인 스마트폰을 상징한다. 세로로 놓인 거울 오브제에 반사되는 무용수들의 빠른 움직임은 대중이 시청하는 쇼트폼의 댄스 챌린지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든다. 무용수는 무대 위에 실재하는 동시에 스마트폰 안에 존재하는 영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용수의 신체성은 실제로 무대 위에 놓여 있지만 거울에 반사되는 이미지 속에서 신체성은 희미해지고, 분산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무대를 보고 있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는 듯한 인식의 경계가 중첩되는 도발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거울은 서서히 자리를 바꾸어 가로로 길게 늘어서기도 하고, 천장에서 거대한 거울이 등장하기도 하며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무용수의 몸을 반사한다. 이는 끊임없이 변주하고 유사한 것으로 스스로를 복제하는 쇼트폼의 존재 형식을 암시한다. 거울은 실재하는 무용수의 몸을 스마트폰 속 짧고 쾌락적인 쇼트폼 화면과 몸 사이의 구분을 직관적으로 교란한다. 
또한 오늘날의 디지털 현실을 반영하듯 작품의 안무에는 다양한 종류의 움직임이 뒤섞여 있다. 한국무용은 물론 현대무용, 브레이크댄스 등 장르 불문의 춤이 빠르게 등장했다 사라진다. 이는 수없이 많은 정보를 분류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접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 따라서 <휙>은 속도, 거울 오브제, 다양한 장르의 춤 같은 요소를 통해 쇼트폼의 존재 형식을 탐구하며, 쇼트폼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비평적 눈으로 포착한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춤꾼’을 자처하는 최종인은 서사보다는 찰나의 파편에 익숙한 동시대 삶을 <휙>에서 짧은 춤의 조각들로 트렌디하게 표현했다.



정길만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


정길만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 - 소리를 잃어버린 자들의 ‘소리’

현재 국립무용단의 훈련장을 맡고 있는 정길만은 <2024 안무가 프로젝트>에서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침묵이 강요되는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자들, 목소리를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고찰을 담아냈다. 정길만은 ‘서사’가 돋보이는 안무를 지향해 왔으며, 이에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에서도 침묵과 나약함을 전개하는 춤의 드라마적 요소가 강렬하게 표출된다. 
먼저 무대에 등장한 건 우산을 쓴 무용수와 그를 둘러싼 히잡을 두른 여러 무용수다. 이들의 머리에 놓인 오브제는 사회가 강요하는 침묵을 가시화하는 장치다. 히잡은 무슬림 문화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규범의 그물망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착용해야 하는 가리개가 아니라 그 문화에서 작동하는 구조에 가깝다.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에서 히잡을 포함해 머리 위에 놓인 여러 오브제는 사회가 강요하는 침묵을 표현함으로써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의 피해자를 가시화한다. 
이 서사는 인물·배경·사건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우선 인물은 사회에 반항하는 무의식 속 내면의 그림자와 이러한 자신의 무의식을 억누르는 의식의 존재가 번갈아 등장하며 전쟁과 폭력, 억압 등의 부조리 속에서 침묵하는 약자의 내면을 보여 준다. 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개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의미한다. 작품의 배경은 부조리한 사회로, 이는 무대 안쪽을 단단히 가로막은 거대한 암석과 이에 투사되는 이미지로 표현된다. 암석의 거대함은 마치 거대한 자연을 맞닥뜨린 듯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고, 그 암석에 투사되는 이미지는 부조리와 침묵이 과거에서 현재까지 늘 존재하는 보편적 논쟁임을 드러낸다. 무대 위의 무용수는 암석에 가로막힌 채 고통받지만, 결국 암석을 노란 조명이 가르며 부조리한 사회에 변혁이 일어났음을 예고하며 작품은 끝이 난다.
잔잔하게 시작해 점차 불가사의한 역동적 동작으로 이어지는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은 침묵을 강요받은 나약한 존재의 언어가 그 사회에서는 들리지 않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즉 나약한 존재들이 외치는 고통과 아픔의 몸짓은 아무리 표출된다 해도 ‘소리’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침묵하는 존재는 더 격렬한 몸짓을 통해 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다. 그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동시에 침묵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는 나약하지만 나약하지 않다.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이 선사하는 소리 없지만 격렬한 움직임은 관객에게 다층적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감정적 동요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사회의 관계, 역사의 문제를 모두 담은 은유는 버거웠다. 다양한 무대 전환과 명확한 스토리 전개, 춤의 구체성을 보여 주며 연대와 희망을 느끼게 만든 섬세한 휴머니즘이 거대한 은유 앞에서 그 힘을 잃어버리는 듯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재화 <탈바꿈>


이재화 <탈바꿈> - 고전과 현대를 잇는 해학의 미학

이재화는 국립무용단원으로, 2018년 <가무악칠채>를 국립무용단 대표 레퍼토리로 만들어 주목받은 안무가다. <2024 안무가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 <탈바꿈>은 경북 안동의 한 마을에 걸린 수백 개의 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탈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한국적인 것에 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했다. 즉 <탈바꿈>은 한국무용을 전공한 이재화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오랜 고민을 담은 작업이다. 
공연은 무대 밖에서 시작된다. 전통 탈을 쓴 춤꾼 두 명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이들은 무대 위가 아닌 객석의 오른쪽 출입구에서 익살스럽게 난입한다. 이처럼 무대 밖을 활용하며 객석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옛날 마당에서 추던 탈춤의 원형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탈바꿈>의 첫인상은 전통 탈춤을 탈바꿈하지 않고 고스란히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통 탈춤이 가진 풍자와 해학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동시대적 맥락과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하며 관객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여지가 있다. 이에 이재화는 작품의 제목인 ‘탈바꿈’이 암시하듯 탈춤을 동시대적 맥락으로 가져오면서 자유로운 변형을 시도한다. 
그 1번째 특징은 현대 스트리트댄스의 움직임 속에 전통 탈춤의 풍자와 해학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다. 이 두 장르는 자유자재로 섞이다가, 중반부에는 LED 탈을 쓴 무용수가 등장한다. LED 탈은 탈춤의 2번째 변형으로, 기술을 활용한 현대의 스펙터클을 전통 탈에 덧입힌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전통 탈춤의 춤사위와 추임새가 마치 스트리트댄스의 일대일 배틀처럼 이어지면서 춤판이 신명 나게 벌어진다. 여기에 최근 주목받는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을 필두로 하는 퓨전 라이브 밴드 5인조의 음악이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처럼 청년 무용단원의 에너지로 가득 채운 전통과 현대의 결합은 우리에게 한국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한국적이라는 표현은 전통에만 국한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현재 전통적 삶과 사고와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국적인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이재화의 답은 <탈바꿈>으로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양자의 몸짓을 결합한 강렬한 생명력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2024 안무가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세 작품을 통해 동시대 한국의 춤을 보여 준 프로젝트였다. 최종인의 <휙>은 국립무용단 특유의 전통적 움직임을 탈피하며 쇼트폼이라는 현대적 감각을 또렷하게 되살려 냈고, 정길만의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은 서사와 구체성으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첨예한 화두인 부조리한 사회 속의 침묵을 가시화했으며, 이재화의 <탈바꿈>은 탈춤이라는 전통을 동시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했다. 이처럼 동시대 한국의 춤은 새로운 삶의 감각을 반영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모색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각적 접근법과 표현법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오늘날의 무용계에 구현될지 주목되는 바다.


글.나수진
무용이론가 및 비평가. 어린 시절부터 체득해 온 무용 언어를 예술과 철학의 언어로 기술하고자 힘쓰고 있다.
특별히 디지털 언어의 홍수 속에서 생명력 넘치는 젊은 무용가의 작품에 주목해 인간의 몸이 지닌 감성과 동시대성을 관객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