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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호 Vol. 413

‘수’고한 당신을 용‘궁’으로 초대하는, 수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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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송년음악회-어질더질>

‘수’고한 당신을
용‘궁’으로 초대하는, 수궁가

한 해가 저무는 시간이다. 국립창극단이 무대를 달군 시간과 작품도 관객의 기억과 추억으로 스며들 시간이다.
여기에 국립창극단은 송년음악회로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다.




국립창극단은 올해도 뜨겁게 달려왔다. ‘창극(唱劇)’이란 판소리(唱)와 극(劇)이 합쳐진 것을 뜻하지만, 국립창극단은 새로운 극(劇)을 창작(創)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여러 작품으로 ‘창극(創劇)’의 시간을 이어 왔다. 3·4월의 <리어>, 5월 <절창Ⅳ>, 6월 <만신 : 페이퍼 샤먼>, 9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11월 <이날치傳>을 선보였다. 셰익스피어도 만나고, 창극단이 보유한 보물 같은 소리꾼도 독무대로 자랑했고(절창), 굿과 판소리의 새 실험도 보여 주고, 옹녀와 이날치가 환생하기도 했다. 틈틈이 이어진 <완창판소리> 시리즈는 채수정·김금미·조주선·남상일·송재영·서정금·김차경 등 시대를 대표하는 소리꾼이 전통의 무게추를 잡아 갔다. 
여기에 국립창극단은 송년음악회로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다. 수궁가를 각색해 선보일 <토선생, 용궁가다>이다. 


창극단과 함께, 수궁가는 진화 중

12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송년판소리>는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연말 공연이다. 국립창극단의 스타 단원이었고, 예술감독을 지낸 안숙선 명창은 <송년판소리>의 단골로 해마다 무대에 올라 창극의 근간이 된 전통판소리를 선보였다. 이러한 <송년판소리>와 함께, 올해 12월은 ‘송년음악회’로 <토선생, 용궁가다>가 더해져 더욱 풍성해졌다. 
살펴보면 국립창극단은 수궁가를 각색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2011년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가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맡아 ‘판소리 오페라’로 선보인 <수궁가>는 연출가 특유의 시각적 효과와 회화적 이미지를 살린 ‘미술관 속 수궁가’였다. 2022년 고선웅이 연출한 <귀토>는 ‘웃다가 숨넘어갈 뻔한 수궁가’였다. 이처럼 수궁가는 국립창극단과 만나 새로운 실험을 수긍하는, ‘수긍가’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수궁가는 원전을 80여 분으로 압축한 버전이다. 길이가 짧아지며 경량화되었지만, 토끼와 자라의 옥신각신하는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창극 콘서트’라는 장르명처럼, 수궁가의 이야기에 여러 음악이 ‘콘서트’처럼 흐른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민요가 중요한 대목마다 흘러나오기에 판소리의 ‘창극’과 민요 ‘콘서트’가 결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여 수궁가라는 ‘음악의 그릇’에 우리에게 친숙한 민요 새타령·뱃노래·자진뱃노래·동해바다 등을 쓸어 담은 작품이다. 
 



수궁가 하나 보며, 여러 음악 퉁치자! 

용왕은 아프다. 수궁인 영덕전을 크게 짓고 난 그가 여러 용왕을 청해 석 달 열흘 동안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얻은 병이다. 여러 약을 써 봐도 효험을 보지 못한 용왕은 용하다는 무당을 데려다 굿을 한다. 이러한 설정은 수궁가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처럼 새로운 설정을 통해 창극단원들이 무녀로 분해 무가(巫歌)를 합창한다. 이처럼 <토선생, 용궁가다>는 ‘상좌다툼’ ‘좌우나졸’ ‘범 내려온다’ ‘토끼화상’ ‘토끼팔란’ 등 수궁가의 눈대목은 물론 여러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는 옴니버스 콘서트 작품이다. 자라가 물 밖으로 나와 듣는 음악도 남다르다. 토끼가 그려진 화상을 들고 물 밖으로 나온 자라의 눈에 들어온 산짐승들은 잔치에서 민요 새타령을 부르며 논다.  
자라는 토끼를 꼬셔 용궁으로 갈 일만 남았다. 토끼가 육지에 남는다면 겪게 되는 8가지 난을 잔뜩 부풀려 풀어놓고 자라가 “어떻소? 나 따라갈라요?”라고 물으니 토끼는 “나 두말 않고 따라갈라요!”라고 답한다. 토끼와 자라는 신뱃노래와 자진뱃노래를 타고 수궁으로 향한다. 




풍자의 날은 접고, 연말이니 따듯하게 

이처럼 민요와 판소리를 타고 향한 말미에서, 수궁가의 교훈은 크게 ‘토끼의 꾀’와 ‘자라의 충성’으로 나뉜다. 이 모든 일이 용왕의 중병으로 시작했고, 그 중병이 영덕전을 완성한 뒤 과한 잔치에서 왔다면 많은 이들은 각자도생을 상징하는 토끼의 편에 설 것이다. 수궁가가 품은 풍자의 칼날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이렇게 튀어나온다. 하지만 <토선생, 용궁가다>는 패자가 없는 따뜻한 창극이다. 신민요 ‘동해바다’를 원용해 마무리를 장식하는 가사가 그 분위기를 대변한다. 연말에 어울리는 따듯한 소리다. “동해용왕 병이 들어 별주부가 세상에 나가 용왕 병환 구하려고 토끼 잡아들였구나. 좌우나졸 둘러싸여 죽을 지경 꼭 당했으나 꾀 많은 토선생은 유유자적 살아왔네. 수국 충신 별주부는 토끼 간을 못 구했지만 하늘이 감동하여 용왕 병이 나았더라.”
이러한 노래들이 독창과 합창, 판소리 리듬에 맞춰 가사를 주고받는 입체창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돼 음악적 다채로움을 더했다. 이번 작품에는 김금미가 도창(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고, 김준수(토끼)·유태평양(자라)·이광복(용왕) 등 창극단의 간판스타들이 출연한다. 현재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인 유은선이 극본을 쓰고 연출로 참여했으며, 창극단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리어> 등의 소리를 짰던 한승석이 작창가로 참여했다. 


판소리로, 한 해를 보내는 ‘Song년’ 

<토선생, 용궁가다>는 12월을 수놓기 전부터 여러 관객과 만나며 인기몰이하고 있다. 창극단·무용단·국악관현악단을 보유한 국립극장은 여러 지역을 찾아가는 공연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충북 음성과 경기도 김포시의 관객은 물론 지난 10월에는 국경 넘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공연이란 것은 없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한 편의 공연을 봐야 한다면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송년의 시간을 수놓는 음악 공연은 <토선생, 용궁가다>처럼 한 장르를 대변하는 하이라이트 음악을 한자리에 모은 옴니버스 형태가 많다. 
연말의 시간을 음악과 함께하게 될 때 우리는 ‘송년’이라는 글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송년’이라 하면 한 해를 보내는 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과 나눌 술 한잔을, 내년에는 좀 더 잘해 봐야지 하는 일상의 각오만을 다지던 시간이다. 하지만 음악과 함께할 때 ‘송년’의 ‘송’이 ‘보내다’를 뜻함과 동시에 ‘노래하다’라는 뜻을 지닌 ‘Song’으로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노래와 함께, 음악과 함께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 그 가운데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음악과 함께한다는 것. 조금은 새로운 일이고, 지난해 찍은 마침표와 남다른 마침표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송현민
음악평론가이자 월간 『객석』 편집장.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송년음악회 - 어질더질>

일정 2024-12-27 | 시간 금 19:30

장소 달오름극장 | 관람권 전석 3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