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호 Vol. 413 MZ 작창가들의 ‘고전 다시 읽기’달다 / 미리보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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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작은 창극 시리즈> MZ 작창가들의 ‘고전 다시 읽기’ 2022년 시작한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가 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첫 프로젝트 당시 선발된 재능 있는 젊은 작창가 두 사람의 창극이 확장판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옹! 엥? 잉, 앙~ 옹가네 집에 일 났네 그려. 괴이하다 이상하다 수상하다 속상허다!” 고집불통 옹가네가 발칵 뒤집혔다. 마누라는 하나인데, 지아비는 둘이라나. 맺힌 게 많은 옹처의 ‘남편 찾기’. 당차게 등장한 옹처가 한마디를 던진다. “아무리 옛날이라도 여자라고 이름이 없네. 아, 원전에서 말이요. 이래도 되는 거여?” ‘이름 없는 여자’였다. 옹고집의 아내라서 옹처로 불리던 사람. “호박에 말뚝 박고 수박에다 금 그리고, 옥상에서 물 뿌리고, 유리창에 돌 던지는” 심술보 남편과 사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난데없이 옹고집이 둘이 됐다. 둘째 딸 옹샘은 “천하제일 고집쟁이 아버지가 둘이라니, 재앙”이라며 한탄한다. 국립창극단의 <작은 창극 시리즈>에 선정된 <옹처>다. 이 창극은 제목 안에 이야기의 힌트가 숨었다. ‘고전 비틀기’의 정석을 보여 준 작품이다. 유실된 판소리 ‘옹고집타령’을 옹처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2022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중 <옹처> ‘지속 가능한 창극’ 위한 백년지대계… 2년 만의 결실 지난 10여 년간 창극계는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창극의 진화’를 이끈 국립창극단은 그간 그리스 로마 신화, 서양 고전은 물론 웹툰 <정년이>까지 무대로 올리며 ‘요즘 관객’과 소통했다. 이른바 MZ세대 관객을 겨냥, 정통 창극을 변주하며 끊임없이 ‘오늘의 창극’을 고민한 것이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새로운 창극 트렌드를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세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시작됐다. ‘창극’을 낡고 고루한 전통예술이 아닌,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동시대 장르로 이어가기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의 일환이었다. 작창은 창극에서 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기반으로 극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업을 말한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창극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영역이다. 이른바 ‘작창의 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한승석 작창가는 “텍스트가 품은 철학적 주제나 행간의 의미에 맞게 음악화하는 것이 작창의 핵심”이라며 “텍스트가 가진 상황과 정서를 장단(리듬), 길(음계), 성음(악상)의 3가지 음악적 수단을 통해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작창은 누구나 도전 가능한 분야는 아니다. 작창은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판소리를 배워 온 소리꾼에게 주어진 영역이다. 작창의 수준은 창극의 질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지속 가능한 창극’을 위한 백년지대계였다. 첫 번째 프로젝트에선 박정수·서의철·장서윤·유태평양이 선발됐다. 이들은 10개월간의 작창 트레이닝을 거쳐 네 편의 창극을 만들었다. 그중 장서윤의 <옹처>, 박정수의 <덴동어미 화전가>가 이번 ‘작은 창극 시리즈’를 통해 관객과 만나게 됐다. 당시 30분 분량의 시연회로 선보였던 이야기는 60분으로 확장했고, 완성된 무대 연출을 통해 관객 앞에 내놓게 됐다. 두 작품은 시연회를 통해 공연의 적합성·독창성·대중성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확장판 버전을 선보이기까진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작창가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된 두 초보 작창가는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지난해엔 창극계 어벤저스(작창 한승석, 음악감독 원일, 연출 이성열)가 뭉친 <베니스의 상인들>에 두 사람이 작창보로 참여, 한승석 작창가를 도와 젊은 감각을 입히며 또 한발 도약했다. 작창가 프로젝트에 이어 대작 공연까지 한승석의 트레이닝을 받은 것은 물론 실전까지 함께했다는 점은 두 사람의 창극에 기대를 모으게 하는 이유다. 기발하고 명랑한 ‘젊은 창극’ 두 젊은 작창가의 창극은 기존의 틀을 깬다. 기발하고 명랑하다. MZ의 시각으로 다가선 ‘고전 다시 읽기’ 작업은 고루하고 낡은 서사, 고리타분한 성(性) 인식,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남녀의 역할을 깨부순다. <옹처>는 이러한 관점으로 고전을 재편하면서도, 통통 튀는 의성어를 사용해 경쾌한 재미를 살렸다.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유연하게 끌고 가며 곳곳에 작창가 장서윤의 감각적 표현을 담아냈다. 기존 창극에선 들을 수 없었던 경기토리를 과감하게 차용한 점도 이 창극만의 특징이다. 1막은 옹처가 옹고집을 찾아가는 진실 게임이다. 누가 봐도 ‘심술 맞고’ 자기밖에 모르는 진옹과 다정하고 따뜻한 허옹 중 진짜(?) 남편을 고르는 이야기를 담았다. 옹처와 두 옹고집의 밀당은 흥미진진하다. 진짜 옹고집을 가리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는 허옹의 대목이 기발하다. 영화 <내부자들>의 명대사인 “몰디브에서 모히또, 모히또에서 몰디브”를 인용, 옹처와 ‘사랑가’로 놀아났다는 추억을 읊는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까지 맥락을 살렸다.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나의 사랑 나의 춘향’을 부르며 과거(춘향가)와 현재(옹처)를 연결한다. ‘자진 사랑가’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1막의 킬링 포인트는 주체적 여성으로 변모한 옹처의 인생을 대역전시킬 선택 장면이다. 2막은 이번 공연을 위해 추가된 분량이다. 완전히 새롭게 짠 2막에선 ‘백발도사’ 캐릭터가 등장, 흥미진진한 극적 재미를 유발한다. 확장판 버전을 위해 태어난 백발도사를 통해 잔혹한 진실과 옹처의 선택, 버림받은 진짜 옹고집 진옹의 고통스러운 심경을 보여 주며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간다. 진옹의 입장에선 화병이 날 만도 하지만, 옹처와 허옹은 어느샌가 신혼의 단꿈에 빠진다. 보기에 따라 인과응보다. 이 과정에서 백발도사의 등장 이유가 밝혀진다. 복수를 다짐한 진옹에게 ‘비장의 처방’을 내리기 위한 것. 갈등과 고난 조장을 위해 등장한 백발도사 덕분에 진옹의 ‘진실 찾기’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얻지 못한다. <옹처>는 시작부터 보여 준 방향성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간다. 결말에선 고전이 품은 권선징악의 시선도 빼놓지 않는다. 2022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중 <덴동어미 화전가> 박정수의 <덴동어미 화전가>는 시종 아름다운 선율과 소리가 어우러진 창극이다. 그 어떤 무대 디자인과 소품도 없었던 시연회에서도 <덴동어미 화전가>는 화사한 봄날이 소리마다 그려졌다.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출중한 소리꾼의 음악성과 만나 모든 장면마다 꽃을 피웠다. 잘 짜인 이야기와 작창의 힘, 국립창극단원의 기량이 어우러져 텅 빈 무대에서도 장면장면 관객에게 상상력을 더해 줬다. 모든 요건을 갖춘 완성판 무대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덴동어미 화전가>는 동명의 내방가사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났다. 그 시절 여성의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해 25살의 ‘잘파 세대’ 작창가와 만났다. 사실 이야기는 처량하다. 하지만 무대는 청승맞지도, 처량하지도 않다. 봄날 꽃구경을 가던 덴동어미가 신세를 한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청춘과부를 구하며 본격적 스토리가 시작된다. 고난의 파도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았던 덴동어미가 돌아보는 지난날이 인상적이다. 그의 삶 안에서 명장면을 가꿔 준 많은 인연이 등장해 빛나는 생을 노래한다.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한 작창 스킬과 만나 깨알 같은 재미를 더한다. 동시대 관객과 소통할 장르 대통합으로 방심한 관객에게 ‘사이드 킥’을 던진다. K-팝 그룹 마마무의 히트곡 ‘나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캐릭터의 등장, “현빈, 원빈, 김우빈보다 아매도 내 낭군이라”는 명대사가 그 예다.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과 본질을 살린 이 창극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전한다. “모두가 봄이고, 모두가 꽃”이라며 누구나의 삶에 가치를 입힌다. 창극식 메시지 전달 방식이 과하지 않게 묻어난다. 글. 고승희 『헤럴드경제』 기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쓴다. 국립창극단 <작은 창극 시리즈> 일정 2024-12-18 ~ 2024-12-22 | 시간 수·목·금 19:30, 토·일 15:00 장소 달오름극장 | 관람권 R석 4만 원, S석 3만 원 | 문의 02-2280-4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