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Vol. 412 작은 것들의 비밀풀다 / 3단3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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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에 남는 것: 소품 작은 것들의 비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미장센, 그중에서도 무대 소품은 세트보다 은밀하고 의상보다 의미심장하다. <정년이>에서 부용이 정년이에게 건넨 분첩, <몽유도원무> 속 아홉 무용수가 짊어진 봇짐, <베니스의 상인들> 사이를 고요하게 흐르던 곤돌라까지. 알맞은 장면에 올바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물들, 그것들이 품은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소품은 단순한 사물을 넘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는 오브제로 기능한다. 비록 소품(小品)이라 부르지만, 그것들이 무대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때로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이자 주제 자체가 되기도 한다. 한지와 종이접기를 통해 작품의 주제 의식을 한층 심화한 <만신: 페이퍼 샤먼>이나 <향연> 속 매듭이 그 예다. 가끔은 옛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쓰임새를 찾기도 한다. 오래되고 쓸모없어진 사물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아름답게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오는 11~12월 공연을 앞둔 <이날치傳>과 <몬스터 콜스>에 디자이너 손에서 재탄생한 소품이 활용될 예정이다. 제작부터 보존, 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제작극장으로서의 면모가 한층 돋보인다. 도구의 형태, 사물의 쓰임새 그동안 소개했던 무대세트, 의상과 같이 소품 또한 초기 단계에서부터 재공연과 관리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다. 레퍼토리시즌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재공연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덕이다. 길게는 10년 주기로 무대에 오르는 소품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소품실에서는 작품별로 회의를 열어 적절한 보관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국립극장은 소품을 크게 대도구·소도구·장대 세 가지로 분류한다. 대도구는 소파와 같은 큰 사물부터 사람보다 큰 마네킹까지 다양하며, 대부분 이동과 보관 시 공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조립식으로 설계한다. 소도구는 크기별로 재분류해 투명한 상자에 보관해 식별의 편의성을 높였으며, <묵향> 속 장대와 같은 기다란 형태의 소품은 별도의 보관함을 만들어 수납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후 소품의 이동·관리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소품의 최종 형태를 사진으로 남겨 소품 바이블을 만들고, 전환표를 작성해 재공연 시 참고하도록 자료를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소품의 위치, 배역, 퀵체인지(Quickchange), 소모품, 그리고 보완점 등을 세세히 기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후 곧장 보관할 수 있는 소품과 세탁 또는 보수가 필요한 소품, 폐기해야 할 소품을 구분해 추가 공정을 거친다. 국립극장은 이처럼 구조화된 소품 관리를 통해 공연 품질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마음으로 만들고 진심으로 모으는 사람들 국립극장은 현재 7천여 점의 크고 작은 무대 소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해오름갤러리에 보관하고 있던 소품을 무대예술지원센터로 조금씩 이전하고 있다. 무대 소품 보관소는 약 1만 점의 소품을 수납할 수 있는 대규모 공간으로,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실제 공연에 사용된 소품을 살펴볼 수 있다. 근대사 박물관에 있을 법한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전화기·타자기, 그리고 무형문화재가 만든 탈과 꼭두각시 인형 등 희귀한 사물을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이 소품들은 때때로 연출가·디자이너·안무가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돼준다. 국립극장에서 보관하고 있는 소품은 재공연뿐만 아니라 연습 공연 등에도 활발히 활용되는데, 주로 엿판·세숫대야·괴나리봇짐 등 조선시대와 관련된 소품이 인기다. 흥미로운 부분은 소품실 인원 모두가 소품 하나하나의 역사를 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창조적 시너지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소품의 지속적 활용과 재창조에도 기여하고 있다. 무대장치부터 의상, 소품 하나까지 깊은 전문성과 체계적 관리로 가치를 보존하고 확장해 가는 국립극장. 무대예술의 저변을 넓혀 나가려는 국립극장의 지향점을 앞으로 무대에 오를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구유리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