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Vol. 412 어떤 가면에 열광하는가맺다 / 괴짜의 역사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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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의 탄생 어떤 가면에 열광하는가 산 자에게 탈이 변화의 도구라면 망자에게 탈은 불변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음악가에게 탈은, 마스크는 어떤 의미일까.
지난 7월 열린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의 여러 무대에서 흥미로운 공연을 꼽아 보라면 <박인선쇼>를 넣어야겠다. ‘젊은’ ‘여성’ 탈춤꾼은 원전이 지닌 고전성과 현대인의 맥락 사이에 놓인 고민, 탈의 안과 밖에 걸친 그 고뇌를 탈춤은 물론 힙합까지 동원해 토로했다. 탈에 관한 이야기이자 정체성에 관한 우화였다. 탈은, 마스크는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예술 소품일 것이다. 수만 년, 수십만 년 전 우리 선조는 사냥 뒤 동물의 대가리를 자신의 얼굴에 대보고 동료를 놀라게 했으리라. 산 자의 탈은 주로 극(劇)이나 제의와 연결됐다. 그리스 아가멤논이나 이집트 투탕카멘의 탈처럼 죽은 자를 위한 데드마스크도 있다. 산 자에게 탈이 변화의 도구라면 망자에게 탈은 불변의 상징이다. 음악가에게 탈은, 마스크는 어떤 의미일까. 얼마 전, 미국 래퍼 카녜이 웨스트의 한국 공연이 뜨거운 화제였다. 한때 스스로를 ‘이저스(Yeezus)(Kanye의 줄임말 Ye에 Jesus를 합성한 것)’라 지칭했던 이 자기애 최강 아티스트는 요즘 새로운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또 페르소나 놀음에 빠졌다. 그가 경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연 신작 청음회 2부 순서에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원래의 그 카녜이로 돌아가 장시간의 열띤 무대를 선보인 게 팬들을 열광시킨 것이다. 마스크 쓴 얼굴보다 민낯이 더 유명한 이에게 마스크는, 벗어던짐으로써 되레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도구로 기능했다. 하지만 대부분 음악가에게 마스크는 쓰고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소품이다. 신비주의 ‘마스크 음악가’를 몇 명 인터뷰한 적 있다. 2015년 서울에서 만난 영국의 IDM(Intelligent Dance Music) 장르 음악가 스퀘어푸셔(본명 토머스 젠킨스). 그는 번쩍이는 LED를 장착한 펜싱 마스크를 쓰고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서트는 그래서 마치 외계인의 접신 제의 같다. 무대 뒤에서 가면 벗고 만난 그는 그냥 일밖에 모르는 진지한 음악 아재의 모습이었다. LED를 장착한 펜싱 마스크를 쓴 스퀘어푸셔(Squarepusher) 2016년에는 일본의 인기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멤버인 DJ ‘러브’를 만났다. 커다란 피에로 가면을 절대 벗지 않는 것으로 이름난 만큼 인터뷰 자리에서도 끝까지 가면을 벗지 않았는데, ‘가면 뮤지션’의 절대적이고 매우 실용적인 장점 하나를 내게 귀띔해 줬다. “공항 입국장을 나올 때 다른 멤버들은 팬들의 사인 공세에 시달리지만 난 다르다. 가면을 벗고 (알려지지 않은 맨얼굴로) 그냥 스태프인 척 보무도 당당하게 뒤에서 따로 걸어 나온다. 편해 죽겠다.”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SEKAI NO OWARI) 꼭 만나야 하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마스크 뮤지션이 내게 남아 있는데 이 두 명은 프랑스인이다. 기마뉘엘 드 오망크리스토와 토마 방갈테르. 프랑스의 전설적 전자음악 듀오인 다프트 펑크의 두 멤버 말이다. 파리의 두 젊은이는, 그들 주장에 따르면,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컴퓨터 버그로 스튜디오 기자재가 폭발하는 사고를 당한 뒤 사이보그가 됐다. 1997년 데뷔작 「Homework」를 낼 때만 해도 민낯으로 다니던 그들이 2집 「Discovery」(2001)를 내며 머리에 로봇 헬멧을 쓰고 컴백하자 사람들은 더 열광하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만 잠깐 썼다 벗는 게 아니다. 이들은 2013년 명반 「Random Access Memories」로 이듬해 그래미 후보에 오르자 로봇 상태 그대로 시상식장에 나타나 상까지 받아 갔다. 앞서 2010년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는 사운드트랙만 만든 게 아니라 후반부 클럽 장면에서 DJ로 카메오 출연까지 했다. 물론 로봇 머리를 뒤집어쓰고서 말이다. 저 두 개의 로봇 두상은 이제 세계 전자음악계에 바흐, 베토벤 초상화의 곱슬머리만큼이나 성스러운 아이콘 취급을 받는다. 로봇 헬멧을 쓴 다프트 펑크(Daft Punk) 카리나나 차은우 정도의 마스크(여기선 ‘얼굴’을 의미)가 아니라면, 음악가의 ‘마스크 연출’은 꽤 영민한 상업적 선택이 될 때가 많다. 캐나다의 전자음악가이자 DJ ‘데드마우스’(본명 조엘 지머먼)의 쥐 머리 가면은 감각적 음악과 함께 그를 EDM DJ계에서 바로 스타덤에 올린 불가결한 요소다. 디즈니와 미키마우스 상표권 무단 사용 여부를 두고 송사까지 벌였지만 뭐 어떠랴. 음악 작업하다 컴퓨터가 고장 나 본체 뚜껑을 열어 보니 죽은 쥐가 있었던 데 영감을 받아 쥐 가면을 쓰고 활동하고 있다는 스토리텔링까지 퍽 좋다. ‘먹방’ 친화적 원통 가면을 쓰고 다니는 미국 인기 DJ 마시멜로(크리스토퍼 콤스톡)는 데드마우스의 후배 격이다. KFC 치킨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속주를 뿜어내는 미국의 ‘버킷헤드’(본명 브라이언 캐럴)는 기타리스트계의 가면 왕이다. 스웨덴 록 밴드 ‘고스트’의 리더 토비아스 포르게는 가면으로 정체성을 두 번 이상 바꿨다. 그가 자임한 첫 번째 역할은 ‘파파 에메리투스’. 해골 가면 위로 교황이 쓰는 추케토 모자를 쓴 악마의 ‘안티-교황’을 연기했다. 4집부터는 스스로를 추기경으로 강등. ‘코피아 추기경’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앞세웠다. 데드마우스(deadmau5) 오죽하면 음악가의 ‘가면 플레이’가 실제 공포영화 연출에도 영감을 줬다는 설이 있다.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천재 음악가 존 케일이 1970년대에 종종 아이스하키 골키퍼 마스크를 쓰고 무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은 그의 1977년 앨범 「Guts」의 표지에 그대로 박제돼 있다. 1980년 호러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13일의 금요일>이 개봉하고 공포 아이콘 제이슨이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 음악 팬들은 무대 위 ‘선구자’ 존 케일을 먼저 떠올렸다. 존 케일(Jhon Cale)의 「Guts」 앨범 캐버 ⓒmonkeyiron 가면 가수는 때로 경연의 묘미도 자극한다. 한때 우리 가요계에는 “쓰면 뜨고 벗으면 망한다”는 격언이 나돌았다. 2015년 MBC TV에서 <복면가왕>이 방영을 시작해 인기몰이할 무렵이었다. 국카스텐 하현우의 ‘음악대장’ 탈을 비롯해 수많은 탈놀이가 안방극장을 달궜다. 시청자들은 저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속 눈 가린 백종원 대표나 안성재 셰프라도 된 것처럼 ‘탈 테스트’를 즐겼다. <복면가왕>은 한국 TV 예능 프로그램 포맷 수출의 아이콘이다. 2019년 미국 폭스 TV에서 <The Masked Singer>라는 이름으로 첫 시즌이 인기리에 방영돼 현재까지 12개 시즌이 나갔다. 일본판도 나왔고, 이런 국가별 스핀오프는 다시 세계 여러 나라에 재수출돼 복면 가수 대결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현상을 낳았다. 얼굴은 타고난다. 조금 고쳐 쓸 수는 있지만 아예 바꾸기는 어렵다. 탈과 가면은 극적 변신의 도구다. 더구나 입과 성대는 얼굴에 붙어 있거나 얼굴과 연결돼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예쁜 눈을 보면서 바로 아래의 입술에서 나오는 달콤한 말로 가슴을 덥힌다. 제2의 얼굴인 가면이 눈과 입을 모두 뒤덮어 가수의 카리스마와 노래에 미치는 필터링 효과는 따라서 막대할 수 있다. 가수의 가면은 대개 보고 듣는 이에게 원초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미국 헤비메탈 밴드 ‘슬립낫’의 도깨비 가면은 공포를, DJ 마시멜로의 말랑이 가면은 친근함을 즉각적으로 전달한다. 따라서 표정이나 이미지가 고정된 탈은 다채로운 음악과 감정의 결을 전달할 때 오히려 방해물이 될 위험성도 있다. 글머리에서 <박인선쇼> 이야기를 했다. 탈은 무대 위에서 일순간 인간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한번 무대예술에서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된 탈은 세대를 건너뛰어도 변하지 않는다. 박인선이 연기하는, 입이 거의 소멸된 수동적 여성 캐릭터 ‘미얄할미’도 그러하다. 우리는 요즘 어떤 가면에 열광하는가. 어떤 탈에 몸서리치는가. 부모가 자녀에게 얼굴을 물려주듯 시대는 다음 시대에 탈을 물려준다. 시대의 하류를 향해 오늘 우리는 어떤 탈을 내려보낼 것인가. 어떤 가면을 전승할 것인가. 글. 임희윤 기자·평론가. 국악·대중음악·클래식·영화음악을 두루 다룬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몸속에 꿈틀대는 바이킹과 도깨비를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