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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호 Vol. 412

아름다운 모순의 굴레

달다 / 다시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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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정반합>

전통에서 발견하는 미래의 신명

바야흐로 공연의 계절이다. 유난히 무덥고 습했던 여름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남산 자락으로 향하는 걸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국립극장 2024-2025 레퍼토리시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첫 관현악시리즈 <정반합>이 10월 2일 저녁,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렸다. 바쁜 걸음으로 공연장에 들어서니 앞뒤로 앉은 관객이 무대에 놓인 악기의 이름을 맞히고 있었다. 국악관현악이 낯선 관객들 사이에 앉아서 공연을 보려니까 괜히 더 긴장되었다. 쉬는 시간 사이 들리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들은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악관현악을 비교해서 듣는 듯했다. 전혀 다른 음악이 생소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 그동안 왜 국악관현악 공연은 보러 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연신 감상을 쏟아냈다. 낯선 감각이 주는 쾌(快)가 어쩐지 부러웠다. 전공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쾌이기 때문이다. 


<정반합>의 문은 김희조의 ‘합주곡 1번’으로 열렸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만석의 편곡으로 새로움을 더했다. 무대 밖에서 들리는 태평소 소리로 연주가 시작됐다. 태평소로 느린 주제부를 시작하는 것은 원곡에 없는 요소인데, 악기 음량을 고려한 편곡자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태평소의 거리감은 첫 연주의 기대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태평소 연주자의 위치를 찾는 관객의 시선이 느껴져 재미있기도 했다. 국악관현악곡임에도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착각할 만큼 민요·판소리·산조와 같은 기층 음악의 요소가 듬뿍 느껴졌고, 자주 등장하는 국악기의 제주(齊奏)는 그 요소를 한껏 뽐내며 성음을 자랑했다. 다양한 장단 변화 속에서 반복되는 3소박과 육자배기 토리의 계면 선율은 국악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 곡은 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일반 관객에게는 국악의 요소를 관현악 구성에 적재적소로 배치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편안한 곡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 곡으로는 신윤수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風流 Ⅳ’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전통음악 형식 중 하나인 사관풍류1)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남창 가객이 부르는 편수대엽 ‘진국명산’과 테너와 베이스로 구성된 남성 2부 합창이 국악관현악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 자못 궁금했다. 팀파니의 웅장한 소리를 필두로 다양한 타악기 연주가 어우러지며 음악이 시작됐다. 가곡 반주에서 관악 연주가 중요한 만큼 이 곡에서도 관악 선율이 두드러졌다. 남성 2부 합창이 마치 가곡의 중여음(中餘音)을 연주하는 듯 악장과 악장 사이를 채우면서 홀로 부르는 남창 가곡과 대비되어 서로 다른 음악 질감이 살아났다. 같은 국악관현악 연주임에도 남성 2부 합창과 함께할 때는 질감이 플랫하게 느껴지고, 남창 가객과 함께할 때는 편수대엽 ‘진국명산’의 가사가 말해 주듯 태평하고 씩씩한 느낌이 물씬했다. 창법에 따라 음악이 다르게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 순간이었다.


1) 가곡 중 ‘두거’ ‘농’ ‘계락’ ‘편수대엽’을 향피리 중심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하는 순 기악곡이다. 잔치에서 상을 올릴 때 연주하는 거상악으로 사용되었으며,

악곡명을 의미하는 동시에 가곡 반주가 기악 독주나 합주 형태로 바뀌는 형식을 뜻하기도 한다.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참고)





세 번째 곡은 최덕렬의 새타령 주제에 의한 국악관현악 ‘수리루’였다. 남도잡가 ‘새타령’은 다양한 장르를 거쳐 편곡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곡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로 시작된 곡은 “삼월 삼짇날 연자 날아들고” 부분이 여러 번 전조(轉調)를 통해 변주되었다. 글로켄슈필과 트라이앵글 같은 귀엽고 챙챙한 소리에 각 악기의 새소리 연주 표현이 더해지니 다양한 새가 모여드는 풍경이 삽시간에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꿈속에서 새가 날아드는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중중모리장단이 시작되며 남도의 멋스러운 육자배기 토리가 음악 전면에 배치되고, 각 악기의 독주로 ‘새타령’의 익숙한 선율이 연주됐다. 다소 곡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 마무리가 애매한 점이 아쉬웠으나 대중적인 국악 성악곡의 주제 활용이 돋보인 곡이었다.


마지막 곡으로는 예술감독 채치성의 태평소 협주곡 ‘메나리조 풍류’가 이어졌다. 메나리토리라고 하면 ‘한오백년’이나 ‘신고산타령’ 같은 애잔한 느낌의 선율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 곡은 태평소 협주곡답게 호방하고 흥이 나는 메나리토리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태평소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을 여러 악기가 변주하면서 음악을 확장하고, 협연자의 연주력이 단연 돋보이게 해 주었다. 하지만 다소 단순한 선율이 반복되면서 음악의 공백이 느껴지는 점, 그리고 곡의 화성과 음 구조, 선율 진행이 국악관현악 초기의 경향을 띠는 것은 못내 아쉬웠다. ‘합’을 이루겠다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포부에는 미치지 못한 곡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헤겔의 ‘정반합’ 이론에 따르면 사실 ‘합’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곳에서 또 다른 모순을 발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합’으로 나아가기를 추구할 수는 있으나 완전하게 완결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연의 제목은 알맞게 지은 셈이다. 





60년 국악관현악 역사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험했다. 그 역사 자체가 정반합 과정에 있었다고 하는 방증일 것이다. 물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서양 오케스트라에 비해 국악관현악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변명에 면죄부를 주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관(關)을 통해 유지되는 국악관현악을 연주하는 사람의 수는 많고, 관심을 갖는 전공자들까지 포함하면 결코 적잖은 무리다. 그 사람들이 모여 국악관현악의 고질적 문제인 음향이나 평균율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하고 대안을 찾아낸다면 국악관현악이 갖게 될 음악적 힘은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건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부디 국악관현악단이 전공자들에게 생존을 위한 직장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히 덧붙이자면, 음향 디자인이 국악관현악의 음악적 효과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짚고 싶다. 대극장 서스펜션 마이크만으로는 국악기의 특성을 살리는 수음이 어렵다. 국악기 구조상 서양식으로 지어진 프로시니엄 극장은 국악기 음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자연음향을 살리기 위해 지어졌다는 극장도 실상 마찬가지다. 국악관현악의 풍성한 음악을 위해서는 각기 다른 국악기의 특성을 살린 세심한 음향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 점을 반드시 상기하고 국악관현악 공연에 적극 반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물질은 발생 이후 정반합의 과정에 놓이며, 모순의 굴레를 맴돈다. 모순의 발견을 한계가 아닌 과정의 연속으로 본다면, 이 굴레를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굴레가 발전 혹은 진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문제에 머무르는 시간이 한 걸음 나아가는 시간보다 훨씬 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패와 좌절에 머무르고 있는지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것. 작은 한 걸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모순의 굴레가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과정이 인간의 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리라. 음악하기에 몰두하는 모두가 이 아름다운 모순의 굴레에서 찰나의 행복을 자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백소망
음악그룹 아마씨 동인. 전통음악과 애증 관계에 있습니다. 이따금 전통 공연예술에 관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