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Vol. 412 슬픔으로 인한 분노와 고립, 수용의 이야기달다 / 미리보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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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기획공연 <몬스터 콜스> 슬픔으로 인한 분노와 고립, 수용의 이야기 삶이 나를 집어삼킬 듯 압도적인 순간이 다가올 때, 피할 수 없는 악몽이 나를 덮치는 순간, ‘몬스터’가 나를 찾아왔다. 그를 불러낸 것은 정말 나였을까? 그는 왜 내게 찾아왔을까? 분노는 상처를 품고 있다. 삶이 통제를 벗어날 때, 두려움과 고통은 나를 잠식한다. 간절히 소망하고 바라는 것을 결코 성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불안으로, 불안은 소외로, 소외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외로움, 그 무엇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절망감, 감당할 수 없는 모든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가 내 안에 들어찰 때, 나는 솟구치는 분노를 느낀다. 나에게 닥친 부당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픈 본능,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감정을 터뜨려야 할 필요, 상황을 종식하고 평안을 되찾고픈 갈망은 축적된 분노를 어디론가 쏟아 내게 만든다. 분노는 항상 그 이면에 숨겨진 다른 감정들을 품고 있지만, 그 원인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영국 최고의 아동 문학상 수상작 『몬스터 콜스』의 변주 2011년 5월, 영국을 대표하는 청소년 소설 작가 시본 도우드(Siobhan Dowd)(이하 도우드)가 구상한 이야기를 패트릭 네스(Patrick Ness)(이하 네스)가 완성한 소설 『몬스터 콜스(A Monster Calls)』가 출간되었다. 아동청소년 도서 전문 출판사인 워커북스(Walker Books)는 암 투병 중이던 도우드가 소설을 완성하지 못한 채 2007년 8월, 세상을 떠나자 SF소설 『카오스워킹(Chaos Walking)』 시리즈로 2011년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작가 네스에게 집필을 의뢰했다. 네스는 도우드가 구상한 인물과 전제, 서두를 중심으로 “도우드가 좋아했을 만한 책을 써야 한다는 단 하나의 지침”을 목표로 그녀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1) “좋은 아이디어는 다른 아이디어가 자라게 한다”고 말하는 네스는 도우드의 이야기가 마치 자신에게 바통을 건네면서 “어서 가. 뛰어. 문제를 일으켜!”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고, 작가가 완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의 바통을 마침내 독자들에게 건넬 수 있었다고 피력했다.2) 짐 케이(Jim Kay)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더해진 소설은 2012년,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아동 문학상인 카네기 메달과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을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작품’이 되었다. 중병을 앓고 있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10대 소년 코너(Conor)는 매일 밤 되풀이되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 항상 같은 장면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악몽에서 깨는 코너 앞에 몬스터가 찾아온다. 매번 밤 12시 7분에 나타나는 몬스터는 코너가 자신을 불렀기 때문에 온 것이라면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몬스터는 대신 네 번째 이야기만큼은 코너가 그에게 들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드시 진실을, 코너가 두려워하는 이야기, 마음속 깊이 숨겨 둔 비밀을 말해야만 한다는 몬스터는 그러지 않을 경우, 코너를 산 채로 먹어 버리겠다고 경고한다. “매우 슬픈 이야기”이자 “용감하고 아름다우면서 연민으로 가득 찬” 소설, “마음을 끌어당기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이야기이자 “뛰어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몬스터 콜스』는 2016년 동명 영화로 제작되었다.3) 네스가 직접 시나리오 대본을 각색한,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J. A. Bayona) 감독의 영화는 어머니와 코너의 그림에 관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아버지와 놀이공원에 가는 장면을 추가하는 등 세부적 변화와 마지막 뒷이야기를 덧붙인 차이가 있지만,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했다. 2018년 『몬스터 콜스』는 2015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신체성과 유동적인 무대, 역동성으로 주목을 받은 연극 <제인 에어(Jane Eyre)>를 연출한 샐리 쿡슨(Sally Cookson)에 의해 브리스톨 올드 빅 극장에서 연극으로 각색되었다. 코너의 내면 목소리를 앙상블 코러스로 표현하고, 천장에 매달린 굵은 로프를 활용해 피지컬 시어터의 요소와 연극성을 강조한 연극 <몬스터 콜스>는 2019년 올리비에상 베스트 엔터테인먼트 가족극 부문을 수상했다. 무장애 공연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감동의 이야기 2024년 12월, 소설 『몬스터 콜스』는 다양한 예술인이 함께 공연하며 장벽을 허무는 ‘무장애 공연’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2024-2025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무장애 공연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 <몬스터 콜스>는 <나무 위의 군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의 정교한 해석과 세련된 미장센으로 두각을 드러낸 민새롬 연출과 <견고딕-걸> <누에> 등의 희곡을 선보이며 살아 있는 캐릭터와 활기 넘치는 문장력으로 주목받는 박지선 작가가 콤비로 참여했다. 지난 5월 다운증후군 여성의 성장과 주변을 다룬 이야기 <젤리 피쉬>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언어연극 개발과 다양성 특화 훈련 및 워크숍을 통해 쇼케이스 공연을 선보이기도 한 민새롬 연출이 어떤 새로움을 더할지 기대된다. 또, 절망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작품 <견고딕-걸>로 고통과 아픔을 주제로 다룬 적 있는 박지선 작가의 각색이 어떤 점을 부각하고 있을지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설의 연극화는 독자가 상상으로 그려 낸 인물을 무대에 구체화한다는 부분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 되기로 한다. 수백만 부가 판매되고, 영화로도 각색되어 많은 사람에게 각인된 이미지가 이미 존재하는 경우, 창작진의 연극화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진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교회 묘지 옆 주목나무가 몬스터로 변해 살아 움직이고, 우화와 신화를 결합한 듯 결코 단순하지 않은 세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코너의 학교와 집, 외할머니 댁의 고풍스러운 거실, 병실을 무대로 옮겨 오는 일은 도전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고립감 속에 홀로 두려움과 싸우며 그 누구의 도움도 거부하고 스스로를 벌주고 싶어 하는 코너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올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박지선 작가는 ‘3인칭 제한 시점’으로 내레이터가 오직 주인공인 코너가 알고 있는 것과 보는 것에 제한을 두고 서술하고 있는 소설에서 벗어나 코너의 엄마와 외할머니, 아버지의 내면의 소리를 덧붙인다. 또, 소설이 길게 묘사적으로 제시하는 세 편의 이야기를 단순화하는 대신 코너에게 발생한 현실 속 사건들이 좀 더 구체화되도록 적용하고,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10대 아이의 까칠한 언어와 유머를 더한 측면이 있다. 무장애 공연 <몬스터 콜스>는 장애·비장애 예술인 7명이 ‘1인 다역’으로 배우별 세부 역할 없이 진행되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 배우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배우가 출연한다. 배역이 한정되어 있던 장애 예술인들에게 더욱 다양한 배역이 제공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한 측면이 있다. 또, 수어 통역사 5명은 ‘그림자 통역’ 방식으로 수어 통역사가 배우의 동선을 쫓아 무대에 함께하는 연출 기법이 적용된다. 원인이 보이지 않는 분노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외면하던 진실과 마주하는 것뿐이다.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끝없이 도망치는 삶으로부터의 구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어야만 한다. 삶은 지속되는 시간이고, 그 시간 속에 과거의 고통과 기억, 마음을 묻는 일이기에 몬스터는 우리에게 요구한다. 너의 진실은 무엇이냐고. 너의 진실을 말해 달라고. 삶과 죽음, 고통과 수용, 두려움과 성장의 이야기인 코너와 몬스터의 만남이 어떤 다양성과 감동을 선사하게 될지 무장애 공연 <몬스터 콜스>를 기대해 봄이 어떨까? 1) Patrick Ness, A Monster Calls, London: Walker Books, 2012, p. 2. 2) Ibid. 3) Jessica Bruder, “It takes A Monster to Learn How To Grieve”, The New York Times. 14 Oct 2011. 글. 주하영 공연비평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객원교수,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 겸임교수. 언론 매체 『인터뷰365』에 비평 칼럼 코너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을 게재하고 있다. 국립극장 기획 <몬스터 콜스> 일정 2024-12-05 ~ 2024-12-08 | 시간 목·금 19:30, 토·일 15:00 장소 달오름극장 | 관람권 R석 4만 원, S석 3만 원 | 문의 02-2280-4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