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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호 Vol. 412

오늘 오신 손님들 반갑소~

달다 / 미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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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오늘 오신 손님들 반갑소~

“죽은 심청이가 다시 나타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윤문식)
“원조집처럼 가설무대 천막에도 관객들이 꽉꽉 차던 때가 생각나요.”(김성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며칠 쉬었다 다시 하는 느낌이에요.”(김종엽)



<마당놀이 모듬전> 배우 김종엽, 김성녀, 윤문



“오늘 오신 손님들 반갑소~” 깃발을 앞세우고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들이 돌아온다. 윤문식·김성녀·김종엽 3인방은 명실상부 마당놀이의 얼굴들이다. 2011년 초 지역 투어를 마치고 마당을 떠난 지 약 14년 만에 다시 깔리는 판이자 국립극장이 5년 만에 부활시키는 <마당놀이 모듬전>(11.29~2025.1.30)에 특별손님으로 등장한다.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 등 국립극장 마당놀이를 묶었다.


마당놀이는 4면이 모두 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 즉 마당에서 우리 전통극의 유희성을 강조했다. 1981년 MBC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장르다. 윤문식·김성녀·김종엽과 극본 김지일, 연출 손진책, 작곡 박범훈, 안무 국수호가 주축이 됐다. 초반엔 무료입장이었다. 충정로에서 정동길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던 문화체육관에서 공연했는데 시청 쪽 정동길까지 줄이 늘어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MBC는 마당놀이 담당 부서를 제작국에서 사업국으로 이전하고 푯값을 받았다. 극단 민예가 마당놀이 초반 MBC의 파트너였다. 마당놀이의 중심인 손진책이 1986년 극단 미추를 만들면서 이 극단과 MBC의 협업작이 됐다.


마당놀이는 독재정권 등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서민의 심정을 풍자와 해학으로 대변하며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초반엔 전경 500명이 관객 틈에 섞여 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면 길거리로 시위를 하러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 위에선 배우들이 아무리 수위 높은 발언을 해도 경찰은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말과 춤, 노래 등 무대장치 미학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찾아온 이후 마당놀이는 뮤지컬처럼 변하는 등 시대에 맞게 유연해졌다.


마당놀이는 또한 국내 이머시브 공연의 원조 격이다. 배우는 객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고, 관객도 공연에 적극 참여했다. 관객은 배우와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마당 바로 앞에 깔린 멍석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다. ‘별주부전(수궁가)’ ‘춘향전(춘향가)’ ‘흥보전(흥보가)’ ‘심청전(심청가)’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적벽가’를 합친 ‘삼국지’까지 판소리 다섯 마당을 비롯해 다양한 성격의 작품들로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3,000회 공연, 350만 명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쓰고 마당을 다시 접었다.


2014년 국립극장이 새로운 배우들로 진용을 짜 2019년까지 공연했다. 젊은 예술인의 에너지가 좋은 반응을 얻고, 흥행에도 성공했으나 한편에선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이 없는 마당놀이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도 나왔다.

연희감독으로 국립극장 마당놀이를 젊은 배우들하고 함께한 김성녀는 관객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다. “당신들이 할 때가 훨씬 재밌어.” 김성녀는 하지만 부담도 털어놨다. “‘레전드 레전드’라고 하시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지만, 막상 우리가 하게 되니 겁이 덜컥 납니다."





마당놀이에서 남자 배우는 윤문식, 여자 배우는 김성녀, 그리고 꼭두쇠는 김종엽이 불문율이니 당연하다. 이들은 30년 동안 원캐스트로 나섰다. 김성녀는 뮤지컬 <에비타> 초연 출연이 겹쳐 첫 회 <허생전>에만 빠지고 두 번째부터 계속 주연을 맡았다. 김종엽은 결혼도 마당놀이 무대에서 했다.


“한 배우가 사고가 나면 공연을 못 하는데 저희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어떻게든 했거든요. 막 날아야 하는 김종엽 선생님이 다쳐 휠체어에 앉아서 대사만 하고 다른 배우가 대신 하늘로 뜨고 그랬어요.”(김성녀) “그때 눈물이 막 쏟아져서 대사가 안 되더라고요. 제가 휠체어를 타서 다른 배우가 대신한다는 걸 뻔히 아시는 데도 관객분들이 환호를 해주시니까….”(김종엽)


윤문식은 2008년 10월 아내와 사별한 슬픔을 마당놀이 무대 위에서 웃음으로 달랬다. 국립극장 앞마당에서 천막을 치고 공연하며, 한 달 동안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간호하러 오갔다. 그렇게 상처를 하고 딸을 시집보낸 직후 <심청전> 공연에서 ‘심봉사’를 맡았다.


윤문식의 심봉사는 유일무이 캐릭터다. 아무리 슬퍼도 사람들이 웃는다. 손진책 연출가가 그에게 심봉사 역을 맡길지 고민한 이유다. 하지만 슬퍼지려고 하면 코믹함으로 승화하는 윤문식의 장기는 ‘애이불비(哀而不悲) 미학’을 선사하며, 해학의 최고봉을 만들었다.  





마당놀이엔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장면이 수두룩한데 “이 양반(김성녀) 때문에 나의 귀중한 걸 관객들에게 몇 번 보여 줬는지 몰라”(윤문식) 대목이 손에 꼽힌다. 김성녀가 윤문식이 입고 있던 바지만 벗겨 그가 입고 있는 여자 빨간 팬티가 나오게 연출된 장면이었는데, 어느 날 윤문식이 정신 차려 보니 팬티가 발끝에 걸려 있었다. 이후 김성녀는 바로 줄행랑을 쳤다. 윤문식은 이후 화를 냈을까. 웬걸, 오히려 김성녀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요일마다 다른 색의 팬티를 입고 오겠다며 잘 벗기라는 것. “벗은 걸 또 연출이 봤나 봐요. 그다음에 변강쇠를 시키더라고. 하하.”


‘마당놀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0년대 탈춤 등 우리 전통 공연 양식이 있다. 우리 풀뿌리 유희를 톺아본 극단 민예에서부터 씨앗을 심었다. 세 사람이 민예에 몸담았던 시절 공연한 <놀부전>도 마당놀이 근간의 한 축을 이뤘다. 최인훈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흥부·놀부 관계에 새로운 시선을 더했다. 이 공연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전위적 공연의 본거지인 소극장 ‘공간사랑’ 무대에 올랐다. 김덕수의 사물놀이,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시작된 공간이기도 하다.





김종엽은 “제가 진행자를 맡았는데 그때 마당놀이 틀을 잡았죠. <놀부전> 인기가 너무 많아서 60번을 본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는 매번 줄을 서서 표를 끊어야 했으니 수고가 대단했던 것”이라고 기억했다.


마당놀이는 기존 공연에 저항적인 반문화의 산물이기도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말까지 유행시킨 윤문식의 걸쭉한 욕은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충청도 사람의 눙치는 유머를 지닌 윤문식의 장점은 아무리 욕을 해도 관객들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의 뉘앙스는 현재 젊은 세대에게도 입소문이 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10>에 출연해 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 래퍼 노스페이스갓은 ‘윤문식 플로우’를 선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윤문식은 인기 온라인 콘텐츠에 출연해 노스페이스갓을 만나기도 했다. 영상 댓글엔 “시원하게 욕 좀 해 달라”는 젊은 세대의 부탁이 줄을 이었다. 윤문식은 “내 욕은 악의가 없으니까”라고 껄껄댔다.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은 무엇보다 이번 마당놀이 부활이 단발성의 이벤트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특별 출연한다. 마당놀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으면, 지속적으로 힘을 보태겠다고도 공언했다. “만약 마당놀이가 우리 대에서 끊긴다고 하면 너무 안타까울 거 같아요. 후배들이 계속 맥을 이어 나갔으면 합니다.”(김종엽)


이렇게 애정을 쏟는 이유는 이들에게 마당놀이가 삶 자체인 데 있다. 셋이 다시 마당놀이를 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생각지 못하게 흘러가는 지금 상황 자체가 삶 같다고도 여겼다. 그러면서 완숙한 완성미를 보여 주는 것이 우리 몫이라고 했다. “예전보다 에너지가 조금 부족할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는 광대패가 무대 위에 올라가면 자연스레 채워질 거라 믿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이렇게 노는 거야’라고 한번 제대로 보여 주고 싶어요.”(김성녀) 마당이 없어 화합하기 힘든 시대에 놀면서 대동단결할 자리가 이제야 생겼다.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사진. 김성재


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일정 2024-11-29 ~ 2025-01-30 | 시간 화·수·목·토·일 15:00, 금 19:30

장소 하늘극장 | 관람권 전석 7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