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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호 Vol. 412

극장 에티켓 안내 멘트

어떤 소리들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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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에티켓 안내 멘트

 




공연 시작 전, 극장에서는 가지각색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온다. 보통은 휴대전화를 무음 또는 비행기 모드로 해 달라는 건조한 멘트가 나오지만, 가끔은 절절한 공감을 끌어내는 멘트가 나올 때가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작은 휴대전화 불빛도 옆 사람에게는 크나큰 절망감을 줄 수 있으니, 휴대전화 사용을 반드시 삼가 주세요”라는 식이다. 멘트에서 간절함이 느껴질 때면 객석에서는 일순 웃음이 터지곤 한다. 아마도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웃음일 것이다. 공연에 가장 몰입한 순간, 옆자리에서 휴대전화 화면이 번쩍이거나 나직한 진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설상가상으로 벨 소리까지 울려 퍼진다면… 그건 정말이지 ‘절망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관크’라는 말이 있다. 관객과 크리티컬(Critical)의 합성어인 이 말은 타인의 공연 또는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통칭하는 말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일종의 하위 개념이 하나둘씩 쌓이고 있다. 어두운 극장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반딧불이’ 또는 ‘폰딧불이’, 음악의 여운이 아직 감돌고 있는데도 누구보다 재빠르게 박수를 치는 ‘안다 박수’와 공연의 맥락과 무관하게 아무 때나 박수를 치는 ‘모른다 박수’, 휴대전화기가 바닥에 툭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 등, 매번 새로운 관객으로 채워지는 객석에서는 늘 다사다난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 탓에, 어떤 공연자들은 이런 ‘관크’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벨 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걸 모티프 삼아 능청스럽게 즉흥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물론 ‘관크’는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모든 것이 꼭 의도된 바는 아닐 것이다. 어떤 장르의 어떤 공연이냐에 따라 지켜야 하는 에티켓이 제각각인 탓에, 누군가에겐 그저 ‘낯선 문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디제이 파티에서는 다들 휴대전화기를 손에 쥐고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의 정보를 확인하거나 디제이 가까이에서 촬영하기도 한다. 판소리 공연의 경우, 예기치 못한 추임새와 박수가 멋지게 곳곳에 들어왔을 때 공연의 묘미가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까닭에 극장의 안내 멘트는 극장마다도 다르고, 또 그날그날의 공연 분위기마다도 달라서, 때론 하우스 안내원들이 당일의 특별한 안내 멘트를 목소리 높여 말하고 다니기도 한다. 


다양한 분위기의 공연을 모두 아우르기 때문인지, 국립극장의 에티켓 안내 멘트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공연 중 촬영과 녹음은 금지되어 있으며 소지하고 계신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져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공연 중 옆 사람과의 대화는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관객 여러분의 배려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깊은 감동으로부터 비롯되는 반응이 자연스레 공연장에 울려 퍼질 수 있는 이곳에서, 관객이 준비할 것은 그저 무대 위에 몰입할 수 있는 간단한 조건 정도겠다. 내 손안의 세상이 아닌, 내 옆의 세상이 아닌, 무대 위 공연자들이 만들어 내는 섬세한 감각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일 말이다.



+ 함께 들어보세요

https://youtu.be/X72GDhN52ik



글. 신예슬 음악평론가   

그림. 곽명주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