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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 405

영화, 물리적 실재를 기록하다

맺다 / 활자로 보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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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영화의 이론』
영화, 물리적 실재를 기록하다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문학과지성사



작가는 말한다. 이 책에는 당신이 찾는 모든 것이 담겨 있지 않다. 이 책의 전적인 관심사(작가의 표현대로)는 ‘사진에서 발전해 나온 일반적인 흑백영화’다. 이 리뷰 역시 그것을 분명히 하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영화는 복잡한 매체다. 책은 영화의 핵심에 다가가는 방법이 영화의 덜 본질적 요소와 변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자문한다. 극히 제한적 영역만 다루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책은 답한다. 사실상 모든 중요한 영화적 진실은 이미 전통 방식의 흑백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퍽 도발적인 전제가 아닌가 생각했다. 수많은 효과와 표현법이 어우러진 현대 영화를 생각하자니 더더욱 그렇다. 현대의 우리는 영화의 수많은 표현과 화법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흑백영화라니, 너무 단순하지 않나? 작가는 색채만 두고 봐도 겉보기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문제가 있다고 쓴다. 여기서 핵심은 ‘제대로 이해한다’다. 작가의 경험에 의하면 카메라가 포착하는 자연색은 흑백영화와 비교해 오히려 리얼리즘 효과를 약화한다. 와이드스크린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하는 장소를 마구 달려 지나쳐버리는 것에 반감을 느꼈다. 왜 모든 문제를 동시에 한꺼번에 이야기해야 하지?


영화는 제 자식들을 탐욕스럽게 잡아먹는다. 하지만 최신 영화가 영화 제작에 대해 최후의 발언권을 가진다곤 할 수 없다. 기술 혁신이 반드시 연출/연기의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 이후로 다른 영화들에서 더 뛰어나거나 필적할 만한 전쟁 장면이 없을 수도 있다. 요즘 작품이라고 해도 옛 모델의 변주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모든 의미 있는 클로즈업은 처음으로 그 기법을 도입해 극적 효과를 입힌 그리피스의 <오랜 세월이 흐른 뒤>(1908)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실험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극적 효과 대부분은 이미 1920년대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에 들어 있다. 그 원형에는 만든 이의 의도가 더욱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옛날 영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 각지의 영상자료관에서 일반에 공개되거나 영화관에서 재개봉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기회가 많아진다면 옛이야기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을 ‘뉴웨이브’라고 착각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가끔은 정말 새로운 물결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형식 미학’이 아니라 ‘재료 미학’을 논한다는 점에서 영화에 관한 다른 저술과 구별된다. 작가는 영화란 본질적으로 사진의 연장이며, 따라서 사진과 마찬가지로 우리 눈에 비치는 가시적 세계와 친화적이라는 가정에 기댄다. 영화가 물리적 실재를 기록하고 드러낼 때 가장 영화다워진다는 것이다. 이 실재에는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많은 현상이 포함되어 있다. 뤼미에르의 동시대인들이 그의 영화-사상 최초의 영화-가 ‘바람에 흔들려 잔물결 치는 나뭇잎들’을 보여준 점에 대해 찬사를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특성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재료를 거의 변질시키지 않는 유일한 예술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내면적 삶, 이데올로기, 영적 관심에 초점을 두지 않을수록 더 영화적이다. 문화적 교양이 풍부한 사람은 영화가 외적인 것에 치우쳐 인간의 지고한 열망을 무시하게 될까 두려워했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본질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라고 발레리는 말했다. 하지만 작가는 영화란 우리의 동시대이며, 자신이 태어난 시대와 명백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외부의 현실을-사상 최초로, 있는 그대로-드러냄으로써 가장 내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매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만들어갈 때, 

생각의 형식뿐 아니라 그 대상 영역까지 매체에 의해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된다.” (수잔 랭어)


국립극장은 해외 유수 공연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앤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를 상영하고 있다. 유럽 공연 트렌드를 선도하는 최신 화제작을 고품질 영상으로 선보이는 이 라이브는 2014년 영국 국립극장의 ‘엔티 라이브(NT Live)’를 시작으로 프랑스 코메디 프랑세즈의 ‘파테 라이브(Pathe Live)’, 네덜란드 인터내셔널시어터 암스테르담의 ‘이타 라이브(ITA Live)’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여 왔다.


영화에 대한 어느 작가의 주장이 담긴 이 책은 영상으로 만나는 대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강화하거나 우회시킬지도 모른다. 나와 맞는 것이건 아니건, 타인의 주장을 접한다는 것은 의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역시 어떤 식으로건 의미 있다.



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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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 이안 네이션, 윤철희 옮김, 전종혁 감수 | 월북아트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재치 있는 대사, 고품격 코미디와 슬랩스틱, 그 안에 감도는 어둡고 쓸쓸한 멜랑콜리를 절묘하게 배합한 케이크와도 같다. 1996년 데뷔작 <바틀 로켓>부터 2020년 <프렌치 디스패치>까지 웨스 앤더슨이 연출한 10편의 영화와 25년 동안의 시간을 총망라한 야심작이다. 전체 필모그래피를 집약한 건 이 책이 유일하다. 영국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이안 네이선이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의 안과 밖 모두를 촘촘히 살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앤더슨 월드로 독자를 안내한다.




뮤지컬의 탄생 | 고희경 | 마인드빌딩


이 책은 뮤지컬이란 장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20세기 이후의 뮤지컬 발전사를 주요하게 다룬다. 기존 뮤지컬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공연계 안에서의 내적 흐름을 중심으로 작품 내용이나 작가와 작곡가 소개 및 창작 과정을 집대성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 책은 왜 그 시대에 이러한 작품이 등장했는지를 사회·경제·문화적 관계성을 통해 살펴보려 하고 있다. 뮤지컬의 역사를 사회·경제적 흐름 속에서 파악해 보려고 시도한 첫 번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