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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 405

반전과 굴곡의 삶 끝에서

맺다 / 괴짜의 역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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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립 박수의 시작
반전과 굴곡의 삶 끝에서

박수란, 좋은 것에게 열렬히 배출하는 칭찬과 응원의 퍼포먼스다. 
그중에서도 기립 박수는 좌석을 갖춘 근대적 공연장이 들어선 후에 생겨났다. 
우리만 여태 편히 앉아 있었던 게 미안할 정도의 열연, 명연을 펼친 저 무대 위 인물을 향한 격한 찬사다.





“자, 어때요! 신나죠! 지금 나만 신난 거 아니죠!? 엉덩이 아프지 않아요? 이제 일어나서 즐겨볼까요? 다 같이, 뛰어!!!”

가수의 선동에 장내는 이내 환호와 함성으로 가득 찬다. 1만 2천 명의 관중이 일제히 기립한다. 천장에서 콘페티가 쏟아진다. 꽃 같은 색종이의 낙하. 공연은 이제 끓는점으로 치닫는다.


콘서트 필름과도 같은 이 장면에 때로 오류가 있다. 아니, 오류가 ‘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저 공연장 객석 한쪽에 프레스석, 그러니까 취재용 좌석이 있다면 그 구역 인간들만큼은 절대 기립하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페루 고원의 나스카 지상화나 풀밭에 그려진 미스터리 서클처럼, 그 직사각형의 구역은 매우 도드라져서 야외공연장이라면 어쩜 인공위성에서도 관측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언론인들이란 그렇게 ‘냉철한 지성’으로 빛나는 분들이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고 여전히 그들만큼이나 엉치뼈가 무거운 사람이다.



조지 프레더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저 고고한 분들도 281년 전, 18세기 중반 영국이었다면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지 모른다. 1743년 3월 23일,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에 위치한 왕립 오페라극장. 조지 프레더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은 긴장 속에 객석을 두리번거렸다. 신작 초연을 앞두고 있었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지난해 했던 초연이 극찬을 받았던 만큼, 작품에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니아·평론가·언론인이 문제였다. 성경에 기반한 작품을 교회가 아닌 극장에서 선보인다는 데 대해 시작하기도 전부터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대박 원제’는 숨기고 ‘(헨델의) 새로운 성(聖) 오라토리오’라고만 타이틀을 내걸었다. 결국 이날의 공연은 조지 2세가 촉발한 기립 박수 세례를 받았고, 이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기립 박수의 기원이 됐다.


사실 헨델은 사회생활의 귀재, ‘갓생’의 표본이었다. 동갑내기인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가 평생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1천 곡 넘게 쓰는 ‘열일’을 하고 자녀를 20명이나 두는 ‘애국’을 하며 월급쟁이로 평생 공무원과 성직자 사이쯤에 있는 태도로 살았다면,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화려한 걸 좋아했다. 본능적으로 그걸 취하는 법도 알았다. 공부를 잘해서 법학과에 갔지만 음악이 좋아 학교를 중퇴하고 음악가의 길을 갔다. 20대 중반에 하노버 궁정 음악 지휘자가 됐지만 자족하지 않았다.


국제 정세에 밝았던 헨델은 ‘런던 코인’을 타보기로 했다. 하노버의 마음 넓은 선제후 게오르크가 헨델에게 1년간 휴가를 준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헨델은 런던에 건너가 주특기인 이탈리아식 오페라로 현지 청중을 홀렸다. 하노버로 돌아왔지만 템스강과 런던 브리지가 눈에 아른거렸다. 1년 반 만에 다시 휴가 내고 영국에 또 갔다. 호평 속에 이제는 앤 여왕의 생일 축하곡까지 만들어 여왕의 총애까지 획득하고 만다. 헨델은 이제 하노버 선제후의 귀국 명령도 ‘읽씹’하고 아예 런던에 눌러앉는다.


‘셀프 창씨개명’. 이름마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에서 조지 프레더릭 헨델로 바꿔버렸다. 구리 신씨의 시조, 축구선수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도 아니고, 철자도 그대로 둔 채 ‘잉글리시맨 인 뉴욕’, 아니 당당히 런던의 영국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갓생 못잖은 반전 인생의 아이콘, 헨델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템스강에서 조지1세에게 수상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헨델. 에두아르 아망 

<George Frideric Handel with King George I of Great Britain> 



영국 귀화 후 돈과 명예 다 가졌다. 주식 투자까지 잭팟이 터져 돈방석에 앉았으니까. 화무십일홍이랬던가. 문제는 생일 축하곡까지 헌정하며 공을 들인 앤 여왕이 급사한 것이다. 후사가 없던 영국 왕실은 말 그대로 ‘사극’을 찍기 시작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수소문하다가 족보에 딱 걸린 것이 앤 여왕의 독일에 있는 6촌. 아뿔싸!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 앤 누님의 6촌이, 하필 헨델이 모시다 배신을 때린 게오르크 선제후였다.

큰일이다. 그가 이제 바다를 건너온다. 하필 이름도 같아 게오르크 대 게오르크. 외나무다리 아닌 왕실에 우아한 피바람이 불게 생겼다. “저자를 매우 쳐라”의 그 ‘저자’가 자신이 되게 생겼다. 어쩌면 능지처참도 상상했으리라. 우리의 꾀돌이 헨델은 또 꾀를 냈다. 어차피 장기는 음악 아닌가. 게오르크에서 조지로 역시 명함을 바꾸고 즉위한 저 조지 1세(전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새 작품을 구상한다. 마침 조지 1세께서 템스강에 배 띄우고 선상 즉위 축하연을 벌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초유의 선상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필사의 노력과 가진 재능을 다 때려 부어 명작을 완성한다. 이름하여 수상스키, 아니고 수상(水上)음악. 조지 1세는 뱃놀이 중 이 음악을 듣고 마침내 작곡가를 수소문해 그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였던 헨델임을 알게 되지만, 음악 잘하니 쿨하게 용서! 그의 (목숨과) 지위를 보존해 준다.


그러나 또 화무십일홍. 조지 1세가 1727년 승하하고 부친과 사이가 안 좋던 그의 아들 조지 2세가 왕위에 오른다. 더욱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인기는 하락세. 헨델은 끝내 파산하고 중풍까지 걸린다. 특유의 건강체였던 그는 그러나 이번에도 ‘극뽀옥’. 자체 온천 요법으로 완치한 뒤 오라토리오에 도전한다. 그것이 더블린까지 가서 초연했던 저 ‘새로운 성 오라토리오’, 즉 ‘메시아’였던 것이다.


다시 1743년 3월 23일 런던 왕립 오페라극장. 연주를 듣던 조지 2세의 눈은 헨델의 복귀작을 들으며 젖어들었고, 급기야 저 유명한 ‘할렐루야 코러스’가 터지는 순간에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격한 정사(政事)의 후유증인지 잠시 졸고 있던 주변 귀족들도 0.1초의 눈치로 왕을 따라 일어날 수밖에. 바로 이 순간, 인류 객석 문화의 지울 수 없는 전형 하나가 생겨났다. ‘할렐루야’에서는 기립해 듣는 전통. 너무 감동적인 열연에는 기립 박수로 화답하는 미풍양속이….


1743년 3월 23일 그날 헨델의 백스테이지 인터뷰 영상이 전해지지 않아 아쉽다. 아마 70미터 질주 골을 넣은 뒤 푸스카스상을 받고 찰칵 세리머니를 하는 귀여운 손흥민 선수쯤 되는 표정이나 진땀 같은 것들이 화면에 잡히지 않을까 하는데 그저 현대인은 그 ‘할렐루야 환희’를 상상만 해볼 뿐이다.

박수란, 좋은 것에게 ‘좋다!’고 할 때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것도 열렬히 배출하는 칭찬과 응원의 퍼포먼스다. 기립 박수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좌석을 갖춘 근대적 공연장에 틀어 앉은 뒤에야 탄생했다. 우리만 여태 편히 앉아 있었던 게 미안할 정도의 열연, 명연을 펼친 저 무대 위 인물을 향한 격한 찬사다. 칸영화제에서 자막 올라간 뒤 10분간 기립 박수를 쳐보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좀처럼 기립하지 않는, 스마트워치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지만 가끔은 나도 진심 어린 기립 박수를 친다. 혈액순환이나 스마트워치 달래기를 위해서만은 아니란 얘기다.


양손이 벌게지도록 부딪치면서 가끔은 280년 전의 어떤 날에 관해 생각한다. 그날의 조지 프레더릭 헨델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을, 게오르크 선제후와 조지 1세, 그리고 그 아들의 삶을…. 또한 이 세상 모든 음악가와 천재와 왕족과 범인(凡人)의 삶에 관해, 그리고 사실은 다들 아마추어인 이 모든 불안한 삶에 벼락 치듯 아주 가끔 콘페티처럼 내려오는, 그래서 모두가 벌떡 깨어나고 일어서는 그 어떤 기적 같은 순간순간에 관하여….



글. 임희윤 

기자·평론가. 국악·대중음악·클래식·영화음악을 두루 다룬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몸속에 꿈틀대는 바이킹과 도깨비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