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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 405

쟁쟁(箏箏) - 활 너머 시간을 달리는 소리

맺다 /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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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허유성

쟁쟁(箏箏) - 활 너머 시간을 달리는 소리


예술 너머의 세계는 성실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허유성 아쟁수석이 보여주는 사실이다. 

예술의 육체적 의무, 육체의 감각적 역량, 감각의 혹독한 훈련이 동반돼야 가능한 상태. 

애절하면서 아련한 ‘특별한 저음’으로 우리 음악의 밑단을 책임지는 아쟁과 허 수석은 그래서 닮았다.





“저는 저음과 맞는 사람이에요. 기둥을 잘 세운 후에 뭘 더해야 집이 탄탄한 거잖아요.

음악 역시 마찬가지예요. 베이스가 탄탄하지 않으면 음악이 흔들리거든요.”


국립국악관현악단에 대한 허 수석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연주자들을 위해 애써주는 스태프들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다. 단원들이 감사함을 느끼고, 타 단체가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특히 타 단체와 비교해 많은 인원(일곱 명)을 보유한 아쟁 파트에 대한 믿음이 크다. 허 수석은 “베이스가 되는 아쟁이 탄탄하니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소리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자부했다. 1995년 1월 1일 입단해 내년이면 30주년을 맞는 그녀는 최근 수석이 됐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자리를 살피는 것과 악보에 활을 그리는 게 그녀의 주된 일 중 하나다. “활을 쓰는 방향에 따라서 음악이 달라지니까, 매우 깊이 고민하고 연습하고 반복해서 효율성을 따지죠. 연주자가 편하게 활을 쓸 때 좋은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연주자에게 활이 불편하면, 음악을 듣는 분들도 불편하다고 느끼거든요.”


수석으로서 “파트원이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사실 그녀는 수석이 된 이후 처음 연습하는 날, 평소와 같은 곳으로 출근했는데도 몹시 떨렸다고 했다. 그런데 후배의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어졌다. “평소 언니가 하는 대로 해요”였다. “제가 그래도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잘 살아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최근 소프라노 박혜상이 레퀴엠 형식에 아쟁 연주와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곡을 발표한 것에서 보듯 아쟁은 인간의 태곳적 감정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다. 그걸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한(恨). 허 수석도 “한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악기가 아쟁”이라고 했다.


그런 아쟁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허 수석이 연주하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자신의 연주가 완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머리로는 되는데 가슴으로는 퍼펙트가 안 된다”고 털어놨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항상 아쉬워요. 스스로 100퍼센트 만족하는 공연이 없어요. 관객이 눈치채지 못할 수 있어도 저는 실수를 알잖아요. 그래서 ‘티 안 나게 틀리는게’ 중요해요. 그걸 위해선 엄청나게 노력하고 연구하죠.”


약 60년 역사의 국악관현악은 서양 악기 도입 등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터전이다. 그래서 유연하고 개방적이다. 허 수석은 “저희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어요. 저희만큼 다양한 색깔의 지휘자를 만나기도 힘들죠. 그래서 어느 순간에 저희도 모르게 실력이 나아진 걸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어느 단체의 누구를 만나도 꿀리지 않죠.”





국립극장 예술교육 <오감오락 음악여행단> 음악감독도 맡았던 허 수석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악기를 꼭 하나씩 배웠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꼭 국악이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되거든요. 삶이 좀 더 뽀송뽀송해진다고 할까요. 협주하며 이기적이지 않게 되고, 자기표현도 더욱 예쁘게 할 수 있게 되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한 허 수석은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편”이라고 했다. 상담을 요청할 경우엔 음악 선배 혹은 인생 선배로서 학생들이 고를 수 있는 보기를 몇 개 던져준다. “음악의 표현 방법이나 삶 속 고민에 관한 보기가 늘 두세 가지 정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경험을 바탕으로 추린, 선택할 수 있는 몇 개의 보기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중에서 ‘너한테 맞는 보기를 찾아라’고 하면, 빨리 이해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부드럽게 말을 못 해요. 잔머리 쓰면서 말을 돌리지도 못하고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오히려 더 이해해 줘요.”


이처럼 감정을 가짜로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점도 아쟁의 성질과 같다. 그건 듣는 이의 감정을 치유하는 카타르시스이기도 하다. 어릴 때 간호사가 꿈이었던 허 수석은 지금은 음악으로 ‘마음 치유’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면모는 대가족에서 자란 영향도 크다. 허 수석은 8남매 중 넷째인 부친의 두 번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식 표현을 빌리자면 허 가문에선 ‘4-2’다. 가족이 너무 많으니 숫자로 표현한다며 웃었다. “명절에 식구 서른 명이 모이는 건 기본이에요. 스무 번 절하는 상황이죠. 하하.”


국립극장장을 지낸 ‘마당극·창극의 선구자’ 허규가 허 수석의 큰아버지다. 허규는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의 부친이기도 하다. “큰아버지께서 해금의 시대가 올 거라며 해금 전공을 권하셨어요. 근데 전 고음이 잘 안맞더라고요. 우연히 아쟁 소리를 듣고 선배 레슨실에 따라가 그날부터 아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학교엔 아쟁 전공이 없어서 학교에선 해금을 연주하고, 하교 후엔 아쟁 연습을 했죠. 저는 여전히 높은 음역대의 소리보단 낮은 음역대의 소리가 편안하더라고요.” 사실 당시엔 큰아버지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국악예술고등학교(현, 전통예술고등학교)에 다닐 때, 5월이면 국립극장에서 <청소년예술제>를 했어요. 그때마다 국립극장장으로 계시던 큰아버지를 찾아가 인사드리고 용돈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게 저와 극장의 첫 만남이기도 했어요. 그저 집안 어른에게 인사드린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역사에 남는 예술인이셨더라고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멤버로 입단해 국립극장과 인연을 맺은 지도 30년이 지났어요. 이쯤 되니 이곳이 제 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큰아버지의 뒤를 잇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역시 허 수석에겐 집 이상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입단했어요. 사실 집보다 이곳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늘 출근하고, 지방·해외 공연을 다니다 보니까 국립국악관현악단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거죠. 이제 진짜 거의 가족 같아요.”


허 수석은 요즘 후배들이 정말 출중하다며, 체계적 훈련을 받아 기본기가 탄탄한 그들이 한때 부럽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제 더는 욕심내고 싶지 않다고, 지금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하고 있는 것과 맡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현재에 집중하고 싶다고 바랐다. 겸손함과 여유를 갖춘 허 수석의 취미는 캘리그래피. 좋은 문구를 쓰면서 마음을 다진다. 청각예술을 하는 예술가가 시각예술까지 아우르며 삶의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낸다. “사실 음악과 삶은 마음의 문제예요.”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