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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 405

마음에 숨겨둔 반짝이는 별을 찾아보는 시간

달다 / 미리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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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어린이 음악회 노래놀이 <별별땅땅>
마음에 숨겨둔 반짝이는 별을 찾아보는 시간

마음 곳곳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잔상은 고난을 겪을 때 위로와 치유의 힘으로 발현된다.
체험하며 즐기고 노래하며 위로받는 어린이 음악회에서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해 보는 건 어떨까.




어린 시절, 주말이 오면 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학교를 안 가는 날에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셨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기억이 구체적이진 않다.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마음 곳곳에 남겨진 것들이 있다. 환상적인 놀이공원, 탁 트인 바닷가만큼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힌 건 ‘공연장’이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하기 전이어서 그런지 무대 위 배우들이 마냥 신비로워서 눈을 깜빡이며 공연을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부모가 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국립극장으로 시선이 간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악에 대한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그동안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2004~2011),  <땅속 두더지 두디> (2013~2015), <아빠 사우루스>(2016~2017), <엔통이의 동요나라 1, 2>(2018~2023년) 등을 올리며 어린이 공연에 대한 제작 노하우를 쌓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오는 4월에는 신작 노래놀이 <별별땅땅>을 공개한다. 1999년부터 다양한 현장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며 연극놀이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양혜정이 연출을 맡았다. 한창 공연 준비로 바쁜 그와 <별별땅땅>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국립극장에 오른 어린이 공연의 성격은 다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공통점은 미래 관객 개발 측면에서 전통예술을 소개한다는 큰 도전 의식이 있었다는 건데요. <별별땅땅> 역시 국악기로 연주하기 때문에 각 악기의 특성을 잘 꺼내보려고 해요. 합주의 형태도 좋지만, 가야금이나 해금, 아쟁 등 개별 악기가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을 확 드러내고 싶어요. 극장을 나갈 때 아이들이 ‘그 악기가 뭐였어?’라고 묻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공연 자체로 놀이가 되는 <별별땅땅>

“제가 처음 어린이 공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예전에 한 문화재단에서 아이들과 예술가가 함께 연극 활동을 하는 걸 본 후부터입니다. 당시 저는 유아교육을 전공했지만 연극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때 어른과 아이가 만나는 특별한 방식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아이를 대상자로 보지 않고 예술가로 바라보는 연극놀이가 인상 깊었어요.”

<별별땅땅> 역시 노래‘놀이’를 표방한다. <별별땅땅>의공연 형식은 특별하다.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보고 듣는 공연 형식에서 벗어나 작품을 직접 체험하면서 즐기도록 만든다. 
“저는 어린이의 신체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어린이는 언어적 발화 이전에 감각을 몸으로 표현하잖아요. 감각의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플레이를 찾는 거죠. 아이의 감각 발현이 어떻게 상상과 연결되는지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이번 공연이 열리는 국립극장 하늘극장은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멀어서 아이가 공연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좀 더 면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안전도 중요하니까요.”

그가 이러한 공연 형식을 고민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보다 코로나의 영향이 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아이들의 바깥 활동 기회가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연은 아이들의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걸 큰 목표로 삼는다. 

“코로나 이후에 공연예술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많이 논의됐습니다. 온라인 미디어 서비스가 많아지며 극장을 방문하는 행위의 가치가 퇴색했고, 자연스럽게 라이브 예술 공연물이 주는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거죠. 그렇지만 진보한 기술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건 인간은 감각적 경험을 원한다는 거예요. 오랫동안 어린이 공연을 올리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세계를 만나길 원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린이 연극은 서사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존재를 눈앞에서 바라보는 경험인 거예요. 그게 삶을 탐구하는 방식이지 않을까요?”




아이와 부모가 함께 교감하는 소통의 장


“아이의 마음속에는 별이 반짝이는데, 어른은 별을 점점 잃어가고 있죠.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번 스토리를 구상했어요. 공연을 보고 어른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죠.” 

<별별땅땅>에는 은우네 가족이 등장한다. 팍팍한 일상에서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짐이 돼버린 은우네. 마음속 별을 잃어버린 이들이 ‘깜빡별’에서 광대 노니들과 함께 노래하며 시간을 보낸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놀이를 통해 다시금 찬란한 빛을 찾은 이 가족의 이야기가 공연의 중심이 된다.

“어린이는 도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주체성을 갖고 세상을 마주할 힘이 있는 존재죠. 그런 인물을 구현하고 싶습니다. 많은 어린이 콘텐츠에서 아이를 약한 존재로 그리잖아요. 결국 지혜로운 어른이 아이에게 방향성을 정해주는 식이죠. 저는 아이가 주체적으로 힘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어요.”

이번 공연은 36개월 이상의 아이가 관람할 수 있다. 양혜정은 “자녀와 함께 국립극장을 찾은 부모 관객 역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얼마 전 10~18개월 사이의 아기를 위한 <푹 하고 들어갔다가 푸 하고 솟아오르는>을 공연했는데 부모 관객이 공연이 끝나도 자리에서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때 아이와 극장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 여운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기타리스트와 애프터 콘서트를 추가했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예술을 경험한다는 건 15분이든 1시간이든 특별한 일이고, 그게 일상 속으로 확장되면 가족 간의 감정 층위가 더 풍요롭게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린이에게 더 넓은 세계를 주려면 부모의 마음이 활짝 열려야 한다. 단순히 표를 사서 아이 손을 잡고 극장을 방문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한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올린 한 어린이 공연에서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돼 보이는 학생과 엄마가 함께 공연장을 방문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은 공연 시작 후에 극장에 도착했죠. 다음 입장 시간 때 들어가려고 대기하던 상황이었어요. 아이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이더라고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 같았습니다.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에게 물 한 잔을 주면서 ‘지금 공연을 안 봐도 괜찮아. 가장 중요한 건 네 마음이야. 지금 공연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다음에 볼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말했어요. 아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공연을 보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부모는 가성비 생각에, 공연을 즐기는 아이의 마음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기도 하잖아요. 부모 역시 공연을 즐기려면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상업적 공연을 제 아이에게 보여주었어요. 솔직히 전 별로였는데요. 아이가 길을 걸으면서 공연에서 나오는 노래를 기쁘게 흥얼거리더라고요. 그때 전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는 공연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건데, 정작 제가 공연을 즐기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죠. 이번 공연은 어린이 배우를 기능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무대에서 그 ‘어린이다움’이 그대로 공존했으면 좋겠어요. 극장을 함께 찾은 어른은 ‘나도 저런 경험이 있었지’ 회상하며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글. 장혜선 
음악 칼럼니스트.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진. 김성재


어린이 음악회 노래놀이 <별별땅땅> 
일정 2024-04-25 ~ 2024-05-05 
시간 화·수·목·금 11:00, 토·일·공휴일 14:00  |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연령 36개월 이상 | 관람권 전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