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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 405

더 아름다울, 우리의 봄

달다 / 미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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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2024 함께, 봄>
더 아름다울, 우리의 봄

따듯한 봄이 오면, 국립극장을 찾아오는 또 하나의 ‘봄’이 있다.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클래식 무장애 공연, <함께, 봄>이다.
올해로 세 번째 찾아온 이 ‘봄’은, 색다른 구성으로 ‘함께’를 이룬다.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

국립극장의 여덟 번째 무장애 기획 공연이자 3년째 개최된 <함께, 봄>은 장애·비장애 연주자가 함께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이다. 2022·2023년에는 장애·비장애 통합 오케스트라인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와 유수의 클래식 연주자의 협연으로 공연을 선보였다면, 올해는 그 구성이 조금 다르다.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이 모인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와 장애 예술인 협연자가 만나 공연을 선보인다. 두 명의 협연자는 각각 1부와 2부에 자신의 기량을 보여줄 협주곡 전 악장을 연주한다. ‘장애’ 예술인보다, 장애 ‘예술인’으로 기획의 초점이 옮겨진 것이다.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최형민 단원과 2부의 협연자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첫 리허설에서 깜짝 놀랐다”는 대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연주할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경험이 있어서 막연히 ‘그때랑 비슷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연주해 보니 비전공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임을 잊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더라고요. 지휘자의 지시 전에, 단원들끼리 음악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전문가다운 모습이 엿보였습니다.”(김지선)
“리허설 첫날, 협연자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음악에 대한 몰입과 열정이 제 귀에 생생하게 전달되어 깜짝 놀랐어요. 제가 느낀 감동이 관객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하니 연주 당일이 더욱 기대되었고요. 협연자 두 분 모두 듣는 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계셨고, 이런 분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제 인생에 쉽게 오지 않을 소중한 경험입니다.”(최형민)


지휘자 금난새   |   피아니스트 배성연   |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공연의 지휘와 해설은 금난새가 맡았다.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를 일찍이 이끌어온 이다. 1부는 폰 주페의 ‘경기병’ 서곡으로 시작, 피아니스트 배성연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3번을 연주한다. 김지선은 2부에 올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공연은 여러 영화 음악을 모은 ‘스크린 뮤직 셀렉션’을 마지막 곡으로 끝을 맺는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했어요. 곡 자체가 아름답기도 하고, 당시 중학생 소녀의 감성에 젖어 연주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이제는 그때의 감성은 없겠지만, 더 깊어진 저만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요. 어릴 때는 내 생각을 단적으로 표현했다면, 지금은 더 구체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어야겠죠.”(김지선)
“두 개의 협주곡 전 악장을 연습하면서, 교향곡과 협주곡의 차이를 느끼고 있어요. 교향곡과 달리 협연자가 추구하는 표현을 이해하고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것이 필요했죠. 교향곡이 더 익숙한 제게는 조금 더 어렵게 느껴졌는데요, 그만큼 음악도 더 많이 듣고, 연습도 많이 하면서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아가고 있습니다.”(최형민)


문턱을 낮춘 곳에 이들이 모였다

“일반적으로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공연일 경우, 한 악장만을 연주하는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전 악장을 모두 연주한다는 게 가장 좋은 소식으로 다가왔죠.”(김지선)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김지선은 맨해튼 음악대학에서 기악과 역사상 첫 시각장애인 입학생이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다. 한빛맹학교에서 후학도 양성하고 있는 그가 이번 공연의 장점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전 악장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무장애 공연에 제가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음악 자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거예요. 몇 년 전 제 친구가 연주하는 한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그 친구의 장애에만 집중해서 공연을 소개하는 것이 아주 아쉽더라고요. 차라리 연주할 곡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연주자가 곡의 깊이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면 했죠. ‘연주자’ 자체에 더 많이 집중해 주셨으면 합니다.”(김지선)

한편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지닌 20대 청년들의 모임이다. 비록 전공은 각기 다르지만, 그 다름이 모여 발산하는 시너지가 있다. 오케스트라는 매주 토요일에 모여 파트 연습부터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공연이 확정되면, 단원 내에서 선착순으로 참여 신청을 받는다. 이번 공연의 경우 바이올린 파트는 무려 30초 만에 마감됐을 정도로 경쟁도 치열했다. 

“저는 지금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학업을 위해 잠시 그만두었다가, 대학 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 악기의 매력에 더욱 빠졌들었죠. 입대도 군악대로 했고, 전역 후에 한국대학생연합오케스트라 오디션에 지원했습니다. 오디션 때 수석들 앞에서 *엑섭(Excerpts)을 연주하는데 자동으로 활이 떨릴 정도로 많이 긴장했었죠. 오디션에 여러 번 도전하는 N수생의 비율도 꽤 높습니다!”(최형민)

흔히 대학 시절을 ‘좋을 청춘의 때’라고 묘사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치열하게 스펙 쌓기에 열중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순수한 마음으로 모인 오케스트라 내에서 이들은 내면의 성장을 경험한다. 청년 처지에서 오케스트라 활동이라는 형태의 문화 향유는 생각보다 부담이 크기도 하다. 악기 구매부터 유지 비용, 연습실과 홀 대관 등 모두 비용이 든다. 청년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며 제공된 이번 공연 기회가 이들에게 더 소중한 이유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며 당연히 악기 연주 실력도 향상되고, 관객 앞에서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저 자신의 성장이에요. 오케스트라는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갈등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이런 시간을 통해 내면의 그릇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듭니다.”(최형민)

음악이 가진 화합의 힘을 설명하는 문장들이 있다. “음악은 국경 없는 언어”라는 관용구가 그 예시 중 하나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도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것.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다.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음악의 힘은 장애와 비장애인을 가로막은 벽도 허물 수 있을까. 배리어(장벽) 프리(없음) 클래식 음악 공연 <함께, 봄>의 연주자들과 대화를 마치며 이들을 만나게 한 음악을 한 번 더 믿어본다. 이번에도 음악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스스럼없이 하나로 만들 것이라고. 같은 마음이 되어 느낀 음악의 감동이 우릴 더 아름다운 봄의 계절에 닿게 할 것이라고.


발췌·인용을 뜻하는 영단어 ‘Excerpt’에서 유래한 용어로, 악기별로 연주하기 까다롭거나 연주자의 기량을 판단하기에 적절한 부분만 떼어내 연주하는 것



글.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국립극장 <2024 함께, 봄>

일정 2024-04-13 | 시간 15:00 |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관람권 전석 1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