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미르 상세

2024년 4월호 Vol. 405

삶과 죽음에 관한 동시적 관점

내다 / 스페셜 2

페이스북 트위터 URL공유

국립무용단 <사자의 서> - 안무노트

삶과 죽음에 관한 동시적 관점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질 49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비극이 아닌 삶의 소중함과 마주하게 된다.





국립무용단 김종덕 예술감독의 취임 첫 안무작 <사자(死者)의 서(書)>는 티베트불교의 대가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출발했다. 『티베트 사자의 서』는 망자의 영혼이 무사히 사후 세계에 갈 수 있게 이끌어주는 지침서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대표적인 불교 경전이다. 김종덕 감독은 2020년 어느 갤러리의 명상전에서 본 <바르도>(『티베트 사자의 서』 원제: 바르도 퇴돌)라는 전시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춤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 <사자의 서>에 부제 ‘49일의 여정’을 붙였는데, 죽음 후 49일 동안 영혼이 이승에 머물며 느끼는 부정·분노·타협·우울, 그리고 수용의 과정에서 『티베트 사자의 서』가 안내하는 대로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고 저승으로 무사히 건너가라는 내용을 담았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삶과 죽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사자(死者)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자는 내용이기에, 국립무용단의 <사자의 서>는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다. 김 감독은 불교 경전에서 시작된 작품임에도 종교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우리 토속신앙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품의 프롤로그는 망자가 심판을 기다리는 이미지다. 죽음을 대면하는 1장은 7명의 망자가 파이프를 위패처럼 휘두르며 그 소리로 춤을 만들고, 저승사자가 『티베트 사자의 서』 중 일부를 낭송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낭독, 통곡, 땅을 두드리면서 만드는 장단의 중첩 등. 1장 ‘제례’는 다른 음악 없이 25분간 무용수가 만드는 소리로만 채워진다. 24명이 두드리는 장단의 웅장함이 어떻게 해오름극장을 장식할지 기대를 모은다. 죽음의 강을 건너며 춤추는 망자의 독무 역시 기대되는데, 망자 역할은 죽음을 맞이한 망자 조용진과 회상 속의 망자 최호종이 연기한다. 망자를 떠나보내는 역할 역시 김미애와 박소영 단원이 나누어 맡았다.


1장 후반에는 향발과 물허벅도 등장하는데 전통 장단인 칠채장단을 중심으로 여러 변주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춤과 음악을 동시에 창작한다는 점이 새로운 가운데 춤으로 말해온 무용수가 소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에 대해 김종덕 감독은 “우리 국립무용단은 재능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움직임의 질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고 타악이나 구음에 탁월한 단원도 많아요. 저는 적재적소에 그들을 배치하기만 하면 됩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죽음이라는 현재의 시점과 여러 사운드 이펙트 등 1장에 가장 큰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춤의 어휘에 대해 김종덕 감독은 “저는 동작을 구성할 때 주동작을 먼저 만들고 ‘반복-변화-발전-왜곡-해체’ 단계를 거쳐 끌고 갑니다. 동작을 한 번 쓰고 버린다면 다양한 볼거리를 줄 수는 있지만 주제를 관통하는 일관된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이번에도 주제가 되는 움직임에 입체적 변화를 주고 있는데, 그 변주의 결과가 다이내믹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라며 안무에 임하는 소신을 밝혔다. 





회상이 주를 이루는 2장은 소년기의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한 장면, 청년기의 사랑과 이별이 액자처럼 구성한 무대에서 펼쳐진다. 죽음에 이르는 장면에서 인상적 시도는 무용수 16명이 강강술래처럼 돌고 도는 ‘회다지’ 장면이다. ‘회다지’는 관을 묻으면서 동물이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횟가루를 뿌리고 발로 다지는 전통적 봉분 축조 과정이다. 이는 망자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몸의 행위이자 마음 다지기로 볼 수 있다. 획일화된 반복 동작은 클라이맥스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망자를 보내주는 마지막 3장은 여성 군무로 시작된다. 망자가 저승길에 접어들었을 때 저편에서 누군가가 기다린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망자는 쉽게 이승을 놓지 못하고 남은 욕망을 분출한다. 얇은 천 뒤에서 꿈틀대는 실루엣이 부조처럼 드러나다 잠잠해지면 이승의 남은 이들이 49재(齋)를 마무리하며 막이 내린다. 김종덕 감독은 너무 친절히 설명하기보다 각 장면의 인상이 주제를 향해 드러나기를 바란다며, 무대 위에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구현되더라도 관객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음악은 현대무용가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재덕과 거문고 연주자 황진아의 곡으로 채워진다. 다섯 개의 과거 회상 부분은 김재덕의 기존 곡을 새롭게 편곡해 사용하고, 마지막 이별과 마중의 장면은 고심 끝에 ‘새벽’과 ‘월정명’을 듣고 감명받은 김종덕 감독의 의뢰로 황진아 작곡가가 맡게 됐다. 악기 편성을 최소화해 섬세한 감성을 표현할 예정이다. 스타일이 크게 다른 두 작곡가의 음악을 조화시키는 것은 안무자의 몫일 것이다.


김종덕 감독은 안무 외에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멀티 플레이어 성향의 예술가다. 이번에도 “조명부터 대본, 무대미술, 의상디자인까지 1차 뼈대는 제가 정리하고, 전문가의 힘을 더했어요. 예를 들어, 삼면을 흰 벽으로 막고 장면에 따라 조각으로 나누어 회전하거나 틈을 열고 싶었는데, 이태섭 무대디자이너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에 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죠. 그 외 조명 장석영, 의상 노현주, 영상 황정남 디자이너는 20여 년간 함께 작업해 온 분들입니다.”라고 밝혔다. 이 중 영상 디자이너는 빔프로젝트 4대를 연결해 죽음의 강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 내용은 사후 세계를 경험한 이의 기억이다. 빛이나 자연 등 여러 증언을 리서치해 반추상의 미디어아트를 제작하고 있다. 의상 제작에서는 질감을 우선하는 성향 그대로 몸의 질감을 잘 드러내는 디자인과 원단을 선택했다. 김 감독은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의상을 만들 수 있지만 춤이 의도한 몸을 가린다면 좋은 의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의상은 무용수를 힘들게 하지만 그는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다. 





모티프가 된 『티베트 사자의 서』 중 무용수가 낭독할 텍스트 역시 김종덕 감독이 종교적 내용을 덜어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며, 내용 전달뿐 아니라 사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적 효과음으로 사용된다. 김종덕 감독은 독립무용가 시절 죽음과 이별, 진혼 의식 등을 소재로 다뤄왔다. 초기작에서 사회적 담론을 다루었으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작품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주역을 맡은 공연이 시작되기 이틀 전 돌아가신 부친에 대한 응어리는 7년 만에 <사계-꼭두의 눈물>로 창작됐고, <굿바이 맘>은 모친을 떠나보낸 후 부지런했던 모친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다 서랍 속 나프탈렌 냄새에 터져버린 감정을 추스르며 만든 작품이다. <굿바이 맘>은 『못난 삶에 호통치지 마라』라는 수필집을 출판하면서 솔로로 공연했는데, 내레이션은 “오늘은 어머님의 49재였다….”로 시작된다. 이러한 작업은 개인의 경험에서 한발 나아가 보편적 시각으로 죽음을 다루게 했고, 이번 <사자의 서>에 이르게 했다. 김 감독은 “죽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고 특히 49재나 3년상 등 이승과 저승을 분리하지 않는 한국 전통의 관점에서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예술감독 김종덕은 국립무용단 작품이 현대 예술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동시대 관객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생각하면 부담이 크다고 하면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작품으로 관객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의 목표라고 말한다.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제 도입 이후 국립무용단 공연은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지난 명절 공연도 90퍼센트 이상이 일반 관객이었다. 다만 과거 무용극 위주였던 국립무용단 작품이 전통의 새 단장 형식으로 큰 호응을 얻은 것은 고무적이지만, ‘전통을 기반으로 동시대성을 확보한 창작’이라는 지향점에는 아쉬움이 있다며, 앞으로 자신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그는 추상성이 포함된 창작 작품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으며, 아름답고 세련된 볼거리가 담긴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관객에게 한 발씩 다가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자의 서> 공연은 춤을 넘어 목소리와 타악으로 표현을 확장시킨 국립무용단원의 탁월한 역량을 감상하며 현대화를 이뤄낸 한국춤 사이에서 전통 장단의 변형이 어떻게 드러날지 눈과 귀를 열어두기를 권한다. 은유와 상징으로 그려질 49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비극이 아닌 삶의 소중함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글. 김예림 무용평론가   

사진. 김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