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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Vol.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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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히스토리
이토록 한국적인 : 고유성과 재해석 사이
국립국악관현악단





내년이면 창단 30주년을 맞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한국 고유의 악기를 중심으로 편성된 국립극장 소속 관현악단입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탄생은 비교적 늦은 1995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국악과 관련된 부설 예술단체에 관한 논의는 1950년 국립극장 개관부터 쭉 이어져 왔으나 예산 부족, 6·25전쟁 등으로 매번 벽에 부딪혔습니다. 1973년, 장충동에 신축 국립극장이 개관하며 국악 공연과 연주자, 그리고 우리 악기를 중심으로 한 연주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마침내 1995년, 초기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박범훈과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단원 46명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사적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초대 단장 겸 상임지휘자를 맡은 박범훈이 이끄는 초기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악의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생활 속에 함께하는 국악’ ‘세계음악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악’을 제시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국악기를 현대식으로 개량하고 연주법을 개발하는 한편,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음악을 레퍼토리로 선택하며 국악의 대중화·세계화를 꾀했습니다. 악기의 개량은 곧 레퍼토리의 확대로 이어졌고, 이는 전통음악은 물론이고 국악가요와 서양음악까지 연주의 폭을 넓히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편으로는 타국과 교류하면서 한국 전통악기의 현대화를 고민하는 장을 마련하는 등 세계와 소통하며 다양한 인종·민족·국가의 음악을 수용한 국악관현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부터 국립극장이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되며 국립국악관현악단도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됩니다. 박범훈에 이어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이끈 한상일 단장은 ‘대중과 가까운 국악’을 중심으로 공연을 기획해 레퍼토리 소재로 삼고, 우리 음악의 범주를 북한 음악으로까지 확대해 남북통일과 평화 실현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2006년에 부임한 황병기 예술감독은 산발적이던 이전 공연의 레퍼토리를 정비해 체계화하고, 그 안에 한국적 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2012년에는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원일이 부임해 당시 시즌제를 도입한 국립극장에 발맞춰 여러 실험적 무대를 과감하게 선보였으며, 가족·어린이 관객층을 위한 음악회를 기획하는 등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공연물 제작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15년 임재원 예술감독에 이어 2019년 김성진 예술감독이 부임하며 한국의 전통을 현대음악으로 재해석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신을 담은 음악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갔습니다. 2023년 11월에는 채치성 예술감독 겸 단장이 새로 부임해 국립국악관현악단만의 비전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된 1995년부터 오늘날까지, 계승과 재해석 사이를 오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시대정신은 현대 국악사의 중요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특히 미디어아트를 접목한 <황홀경>, 로봇 지휘자가 함께한 <부재>, 증강현실(AR) 전시 연계 공연 <관현악의 기원>, 술과 함께하는 <애주가> 등 기술과 감성의 결합을 통해 동시대가 공감할 수 있는 국악관현악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가장 동시대적 방식으로 관객과 호흡해 온 국립국악관현악단.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가능성의 세계를 끊임없이 넓혀가는 이들의 여정은 곧 한국음악의 미래입니다.


글. 구유리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윤해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