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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Vol.371

멈춤을 딛고 일어서는 모든 여성에 대한 이야기

깊이보기 둘 | '명색이 아프레걸'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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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시아영화제에 참석한 박남옥(사진 제공 : 이경주)


여성 예술가에 대한 헌사. 시련 속에서 의지를 잃지 않는 강인한 인간에 대한 뜨거운 찬양을 만나보자 

7년. 한국 여성 영화감독들의 데뷔작과 차기작 사이에는 평균 7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최근 그 기간이 줄어들고 ‘싱글라이더’의 이주영, ‘벌새’의 김보라, ‘69세’의 임선애 등 주목받는 신인 여성 영화감독들이 등장했지만, 세 편 이상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여성 영화감독은 여전히 드물다. 2020년의 상황도 녹록지 않은데, 전쟁 직후에 영화를 만들던 여성 영화감독의 고충은 어쩌면 상상 밖의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의 이야기다. 

한 줌이자 전부였던 영화
음악극 ‘명색이 아프레걸’은 박남옥의 삶에 집중한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이전에 굉장한 영화 애호가였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엄혹한 식민지 시대, 그의 답답함을 달래주던 것은 영화였다. 그는 배우 김신재의 열렬한 팬이었고, 영화에 대한 글을 썼으며, 영화 현장에 있기 위해 입대했고, 기어이 자신의 영화를 만들었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아이를 낳고 사흘 만에 극장을 찾은 박남옥의 노래로 시작된다. 그의 감격은 영화 내용보다는 홀로 외출해 영화를 보았다는 행위 자체에 있다. 극장은 그가 고단한 현실을 잊고 자유와 꿈을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처럼 ‘명색이 아프레걸’은 박남옥의 개인사, 그의 첫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가 된 ‘미망인’의 제작 과정, 여성에 대한 시대의 관점이 뒤섞여 흘러간다. 

박남옥은 극장에서 만난 영화감독에게서 영화계 소식을 듣고 ‘미망인’을 만들기로 다짐한다. 전쟁미망인의 숫자가 전국 50만 명에 이르렀어도, 한국 영화계가 또다시 ‘춘향전’을 제작하며 여성의 정절을 고집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을 깨끗이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오래된 사랑과 “악녀도 선녀도 아닌 사람으로서의 과부를 들여다보겠다”라는 사명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아이를 업고 제작비를 구하러 다녔고, 자신의 집에 세트를 지었다. 직접 밥을 해 동료들을 먹이고, 반사판을 들었다. 배우들은 “남자 감독들 과부 얘기하곤 다른 것 같아서” ‘미망인’에 출연했지만, 제작비 부족으로 촬영은 멈추기 일쑤였다. 후반 작업과 개봉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54년 6월 영화 ‘미망인’ 촬영. 하단에 박남옥의 자필 메모(사진 제공 : 이경주)


최초의 여성 영화 ‘미망인’ 
‘미망인’은 모성보다 사랑에 더 우선순위를 두었던 여성을 통해 전쟁미망인의 일상과 욕망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미망인·첫사랑·아프레걸로 쉽게 분류되고 소비되던 여성의 내면이 박남옥에 의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분풀이를 엉뚱한 곳에 하는 여성에게는 “남편한텐 찍소리도 못 하면서 죽자고 여자만 잡느냐”며 문제를 지적했고, 유교적 가치관에 정면 도전했다. ‘미망인’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분열돼 가는 박남옥의 이야기이자 세상을 향한 모든 여성의 외침이었다. 한국 영화사에서 ‘미망인’을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의 영화가 아닌, 여성영화로 정의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여성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부장제는 박남옥에게 창작의 동력이기도 했지만, 가장 강력한 벽이기도 했다. 성별이 더해진 고유명사가 그러하듯, ‘아프레걸’은 ‘자유부인’과 함께 1950년대 여성을 비판하기 위한 단어로 자주 쓰였다. 투포환 대회에서 신기록을 기록한 박남옥에게 세상은 “여성 선수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고, 직접 제작비를 구하러 다니는 수고에는 “여성 영화감독 1호의 영예를 자식이 만들어줬구먼”이라고 비아냥댄다. “여자는 여자의 일이 있다”며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받는 것도, 일과 가정 사이에서의 고민도, 자신에게 언제 다시 기회가 주어질지 모른다는 불안도 여성에게만 존재했다.

실패라는 새로운 길
‘명색이 아프레걸’은 2000년 ‘우루왕’, 2011년 ‘화선 김홍도’ 이후 9년 만에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함께 하는 작품이다. 2001년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 이후 스무 편 가까운 작품을 함께 만들어온 김광보 연출가와 고연옥 작가가 작품의 큰 틀을 꾸린다. 여기에 최근 창작 오페라 ‘검은 리코더’ ‘빨간 바지’로 주목받은 나실인 작곡가의 음악이 더해졌다. 특히 세 창작자는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산하 예술단체 300여 명이 참여한 ‘극장 앞 독립군’으로 합을 맞춘 경험이 있어 또 다른 대형 작품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개봉 사흘 만에 상영이 중단된 ‘미망인’처럼, ‘명색이 아프레걸’도 가족과 꿈을 모두 박탈당한 박남옥의 실패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실패는 길이 됐고, “나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우리나라 여성 영화인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세계로 진출하는 것도 보고 싶다”라던 박남옥의 바람은 영화를 넘어 공연예술에 안착했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1차적으로 여성 예술가에 대한 헌사지만, 동시에 어떤 시련 속에서도 의지를 잃지 않는 인간의 강인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공연예술의 존재 자체를 재정의해야 하는 시기다. 잠시 멈췄다 소주 한잔 들이켜고 다시 달려나가는 박남옥의 에너지가 무대 위와 아래의 모두를 위로하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명색이 아프레걸’에서는 국립창극단원과 객원 배우들이 출연하며 박남옥 역은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소녀가’ 등에서 다양한 매력을 펼쳐낸 국립창극단 이소연, 객원배우 김주리가 열연할 예정이다. 국립무용단의 움직임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 더해져 풍성한 시간이 될 ‘명색이 아프레걸’은 12월 23일부터 내년 1월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하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 여성의 선택과 삶에 주목하는 공연 전문 월간지 ‘여덟 갈피’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