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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호 Vol.334

바람길 따라 세상과 통하다

악기도감 | 이용구의 단소·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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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 듣는 음색이었어요.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땡땡이’ 치고 나간 공원에서였죠. 리코더는 아닌데… 뭘까 싶어 무작정 소리를 좇아갔지요.”

오묘한 댓소리를 좇아 도착한 곳은 청주 YMCA(기독교청년회) 회관. 일주일에 한 번 청년을 대상으로 단소 교습을 하는 동아리 ‘청율회’였다. 지금과 달리 학교에서 국악을 가르치지 않던 1986년, 음악을 좋아해 리코더로 가곡을 불곤 했던 이용구는 그렇게 단소와 처음 만났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전통악기 동아리와 풍물패·탈춤패가 생기면서 막 민족문화가 부흥하던 시기였어요. 단소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지만 청년 동아리라 고등학생은 가입이 안 된다더라고요. 물어물어 PVC파이프로 만든 단소를 구해 혼자 연습했어요.”

이용구의 옛이야기에 진취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5음음계에 익숙지 않던 그는 다시 YMCA를 찾아 배움을 청했다. 지공을 뚫고 악기를 만들었으며, 전공 개념이 없는 단소 대신 대금을 배워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단소 산조 창시자인 추산 전용선의 가락을 이어받은 이생강의 집에 머물며 단소와 대금 가락을 전수받았다.

“이생강 선생님께 산조단소를 배웠어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학생을 거두셨는데, 모두 모여 앉아 단소와 대금을 불곤 했죠. 어깨너머로 한 가락씩,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어요.”

그러던 중 제9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1989), 제1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기악 부문 장원(1990)을 수상하며 이용구라는 이름을 알렸다. 1994년 국립창극단 기악부에 입단해, 이듬해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단원이 됐다. 지금까지 꼬박 20년 넘는 세월을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했다.

“단소로 악기를 시작했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선 대금을 불어요. 그간 악장으로 신경 쓸 일이 많아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 평단원이 되니 마음이 편안하네요.(웃음) 사실 국악관현악에서 단소가 자주 쓰이지는 않아요. 단소가 필요할 땐 대금 주자가 연주하지요. 2013년 가야금 수석 문양숙 단원과 함께한 국립예술가시리즈15 ‘수작(秀作)’이 기억에 남아요. 첫날에 단소 산조와 창작곡을 비롯해 영국민요 ‘그린슬리브스(Greensleeves)’와 헨델의 리코더 소나타 G단조를 개량단소로 선보였어요. 바로크 첼로와 단소의 음색이 퍽 잘 어울리더군요. 바로크식 리코더도 나무로 만든 악기니, 단소로 연주해도 자연스러울 수밖에요.”


오늘날 단소로 창작곡과 서양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용구의 개량 덕이다. 오랜 시도 끝에 2002년, 그는 2개의 지공을 추가해 반음 연주가 자유롭도록 개량한 단소로 특허를 취득했다.

“악기를 시작한 때부터 지공을 뚫어 새로운 음을 불어보곤 했어요. 연탄집게로 구멍을 내고, 달군 우산대로 내경을 넓히며 악기를 직접 만들었죠. 뒤늦게 지공 뚫는 기계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지만요.(웃음) 오케스트라 아시아 활동을 하면서 악기를 본격적으로 개량하게 됐죠. 우리 악기는 음정의 간격과 배열이 서양 것과 다르기 때문에, 서양어법으로 쓴 곡을 편하게 연주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중국과 일본의 악기는 개량을 통해 음을 효율적으로 내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우리 악기로 12반음을 모두 연주할 수 있을까? 서양음악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악기 개량을 통해 절충점을 찾는 작업이었어요. 개량단소를 만들고 난 뒤엔 교본도 쓰고, 음반도 냈죠.”

많은 것을 이룬 지금도 그는 여전히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12율명에 익숙지 않은 초보자가 좀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지공에 번호를 매긴 숫자보를 만들고, 맥이 끊겨가는 단소 산조를 살리기 위해 교본도 집필하고 있다. 한편 2015년엔 전용선 선생의 단소 산조를 분석해 한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앞으로 남은 일은 조(調)마다 단소를 하나씩 만드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거실에선 큰 TV, 이동할 땐 더 작은 차량용 모니터, 야외에선 스마트폰으로 TV를 보잖아요. 조에 맞는 단소를 골라 쓸 수 있다면 여러 개의 악기를 두고 특정 시점에 맞게 바꿔 연주할 수도 있겠죠. 창작곡이 더 많이 나올수록, 개량단소도 더 많이 필요할 테니까요.”

단소의 흩어진 역사를 모아
단소의 기원은 뼈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대의 피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신라의 피리 부는 천인상 등을 보면 천인들이 단소와 비슷한 악기를 불고 있다. 일본의 보물 헌납 기록인 ‘도다이사헌물장(東大寺獻物帳)’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이 샤쿠하치(尺八)를 전했다고 한다. 샤쿠하치는 지금의 단소와 음계가 같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단소와 같은 악기가 있었다고 짐작한다. 그러나 널리 연주됐음에도 성문화된 기록은 드물다.

“조선 성종 때 ‘악학궤범’에도 퉁소에 대한 설명은 있는데 단소는 없어요. 아무래도 단소가 만들기 쉽고, 민초의 악기란 인식에선지…. 퉁소도 민간에서 쓰던 것이 아니라 아악용 퉁소만 기록에 있죠. 단소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실제로는 널리 쓰였을 거예요.”

조선 후기, 호젓한 음색을 지닌 단소는 풍류악기로 사랑받았다. 합주는 물론 시조와 가곡 반주에도 빠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연주자들이 각 지방의 풍류방에 모여 영산회상 한 바탕 연주하는 게 낙이었어요. 풍류를 즐기는 것이지요. 여러 악기가 모이는 곳엔 항상 단소가 빠지지 않았어요.”

풍류는 전라도 전주나 이리(익산), 구례의 줄풍류가 이름났고 이곳에서 활동하던 추산 전용선은 단소 산조를 만들었다.

“단소는 취구가 작아 요성이 힘들고, 다른 악기에 비해 음역이 좁아 산조를 연주하기 어려워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걸 전용선 선생님이 만드셨죠.”

그러나 선생의 가락이 온전한 형태로 전승되진 못했다. 이용구는 흩어진 산조 가락을 모아 한 바탕으로 복원했고, 1994년에 초연했다.

“선생님의 음원 다섯 개가 전해져요. 김소희 명창의 자택, 어느 댁 사랑방 같은 곳에서 연주한 것을 누군가 녹음한 거죠. 보통 관악기 산조는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네 장단으로 구분되는데, 네 장단이 모두 연주된 녹음은 없어요. 토막으로 나뉜 장단들을 산조 형태로 짝을 맞추고, 연주하기 편하게 13분 정도로 짧게 재구성했어요. 가락을 덜고 넣고 옮기며 하나의 틀로 만든 거죠.”

지금처럼 단소가 ‘만인의 국악기’로 인식된 것은 1995년 제6차 교육과정으로 개정되면서부터다. 국악 교육을 장려함에 따라 휴대하기 편하고, 연주법이 한결 쉬운 단소가 널리 사용됐다.




단소와 퉁소 자세히 들여다보기
단소와 퉁소의 소(簫)는 ‘대나무로 만든 종적악기’를 뜻한다. 단소(短簫)는 ‘짧은 소’, 퉁소(洞簫)는 ‘위아래로 뚫린 소’다. 해묵은 황죽이나 검은 오죽으로 만드는데, 대가 동그란 숫대보다 타원형에 가까운 암대가 소리 내기에 더 편하다. 단소는 크게 정악단소·산조단소·개량단소, 퉁소는 정악퉁소·시나위퉁소·북청사자놀음퉁소로 분류한다. 이용구는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를 연주한다. 악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蓮’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그가 고등학교 때 받은 호, 연성(蓮聲, 연꽃의 소리)에서 따왔다.

현재 연주되는 대부분의 악기는 정악단소다. 정악단소는 경기음악에 쓰여 경제(京制)단소라고도 한다. 산조단소는 향제(鄕制)단소에 속한다. 향제는 남도에서 연주되는 스타일로, 경제보다 전체적인 음고가 높다. 산조단소 역시 정악단소보다 반음 높다. 두 악기의 길이는 비슷하나 정악단소의 지공이 조금 더 아래쪽에 위치한다. 정악과 산조 악기의 가장 큰 차이는 요성 방법이다. 정악단소는 플루트의 비브라토처럼 호흡의 강약으로 요성을 낸다. 산조단소는 고개를 흔들어 강하게 음을 떠는데, 시김새에 따라 악기를 숙이고 젖히기도 한다. 상체를 이용해 남도음악의 깊고 구성진 맛을 살리는 것이다.

정악단소의 3·4공 사이, 5공 아래에 지공을 추가한 개량단소는 7음음계 연주가 가능하다. A♭(중仲)관을 예로 들면, 기존의 지공으로 연주할 수 없던 C(남南)음과 G(고姑)음을 낼 수 있다. 이용구의 개량단소에는 그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물을 파고 메우듯, 지공을 몇 번씩 뚫었다 막기를 반복하며 완벽한 음정을 내는 구멍을 찾은 흔적이다.

퉁소는 주로 북청사자놀음의 반주 악기로 쓰인다. 가장 아래엔 음정조절을 위한 헛구멍인 칠성공이 뚫려 있다. 퉁소의 지공 크기는 단소의 세 배 정도. 시나위퉁소와 북청사자놀음퉁소에는 청공이 있어 퉁소의 음색에 장쾌함을 더한다. 아악퉁소는 조금 더 굵고 크며, 청공이 없어 큰 단소와 음색이 비슷하다.




운지법이 다른 단소 셋
정악단소는 왼손 엄지로 뒷지공, 검지와 중지로 2·3공, 오른손 중지로 4공을 짚는다. 5공은 사용하지 않고, 지공을 모두 열었을 때는 오른손 엄지로 악기를 지탱한다. 산조단소는 왼손 검지와 약지로 2·3공을, 오른손 검지와 약지로 4·5공을 막고, 오른손 엄지와 중지로 악기를 잡는다. 정악과 다른 운지법 덕분에 격렬한 요성이 가능하다. 개량단소는 정악단소와 운지법이 같으나 3·4공 사이에 추가된 지공을 왼손 약지로, 가장 아래 지공을 오른손 소지로 막는다.


부는 방향에 따라 소리도 달라요
리드 없이 바로 취구에 숨을 불어넣는 단소·퉁소는 같은 취법을 가진 횡적 관악기 대금·소금과 같이 묶이곤 한다.

“단소와 대금의 음색은 확연히 구분이 되지만, 퉁소와 대금은 둘 다 청의 울림이 있어 구별이 쉽지 않죠. 자세히 들으면 대금의 청 울림은 옹골지게 뭉쳐 있고, 퉁소는 좀 더 이완돼 있어요. 소금과 단소도 비슷해요. 소금이 맑고 압축된 날카로운 소리라면, 단소는 조금 더 풍성하고 푸근하죠. 입김과 바람 소리가 직접적으로 섞인 단소 음색이 조금 더 편안하게 와닿아요. 가로로 부는 대금·소금의 경우 관 한쪽이 막혀 있어 소리가 둥근 파형으로 힘차게 휘돌아 나가고, 세로로 부는 단소나 퉁소는 바람이 직선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의 손에 전해진 단소 작품
이용구는 재일동포 연주자인 리동신에게 단소와 산조 악보를 만들어 주고, 리동신은 그에게 북한의 개량단소 작품을 선물했다. 단소를 가운데 두고 남북 교류를 이룬 셈이다. 그렇게 받은 곡이 ‘초소의 봄’(작곡 공영송), ‘봄소식’(작곡가 미상), ‘들판에서’(작곡 강문길)다.

“북한은 단소 음악이 굉장히 발달해 있어요. 소금보다 단소를 선호할 정도죠. 세 곡 모두 단소 개량과 관련된 창작이 활발하던 1970~1980년대에 작곡됐습니다. ‘초소의 봄’에는 산조의 꺾는음·떠는음 등 기본적인 시김새와 전통 장단이 적용돼 있고, ‘봄소식’은 시나위와 비슷해요. 언뜻 들으면 전통음악이라고 생각할 정도죠. ‘들판에서’는 현재 국악방송 라디오에 가장 많이 신청되는 단소 작품이라네요. 굉장히 한국적이면서도 재밌고 기교적인 요소가 많아 개량단소의 매력을 잘 보여주지요.”

글 전윤혜 출판사 ‘수류산방’ 편집자. 음악교육을 전공하고 월간 ‘객석’ 기자로 활동했으며, 2015 화음평론상을 수상했다.
사진 전강인